이 성 남전북지방조달청장

전주와 인연을 맺은 지 2개월하고 10여 일이 지났다. 한 여름에 부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문턱에 들어서 있다.

그 동안 관계기관 방문과 공식 모임 등으로 바쁘게 움직인 일정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모처럼 여유를 찾아 집무실 창 밖을 바라보면서 전주에서 보냈던 날들을 뒤돌아본다. 그간의 생활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온다.

 '음식-소리-인심' 고향의 情

몸은 잠시 머물고 있었으나 마음은 오랫동안 살아온 정든 고향으로 여겨지는 건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접할수록 감칠 맛 나는 전통문화의 맥과 후덕한 인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흔히 전주를 맛의 고향이라고 한다. 객지생활의 첫째는 먹을 것 해결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은가?  콩나물국밥, 비빔밥, 추어탕, 순두부백반 등이 먹을 만하다. 콩나물국밥은 단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고 비빔밥은 갖가지 나물과 매콤한 고추장이 조화를 이루어 먹음직스럽다. 순두부백반은 뚝배기에 담긴 얼큰한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여기에 컬컬한 막걸리나 민속주인 복분자를 곁들이면 식도락을 더욱 즐길 수 있으리라.  모두가 비싸지 않으면서 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음식이다. 대부분이 주변산지에서 구할 수 있는 소박한 재료를 손맛과 인심으로 만들어 내는 공통점이 있다.

전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판소리 혹은 창이다. 이곳의 풍류와 멋들어진 가락을 접하지 않고는 전주를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네 삶을 재치와 기지로 풍자한 가사에 애절하면서도 때로는 옹골차고 걸쭉한 가락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린다.

이곳 전통축제인 대사습놀이나 풍남제, 세계소리축제 등의 근간은 소리다. 우리네 삶 속에 이 곳만큼 소리문화가 뿌리 깊이 박힌 곳이 또 있을까? 그 가락이 너무 좋아 바쁜 일정 속에서도 4개월 국악과정을 신청하여 배우고 있다. 이제 겨우 중머리장단과 추임새를 배우는 걸음마 단계이지만 열심히 배우면 흥부가 한가락 정도는 뽑을 수 있다고 한다. 분수를 모르는 과욕일까? 판소리는 전문소리꾼이 고수장단에 맞춰 청중들 앞에서 신명 나게 벌이는 창극이므로 일반인들이 배우기는 어려우나 창은 우리민요를 우리가락에 맞춰 혼자서 부를 수 있어 배워 볼만하다.

가 볼만 한 곳으로는 연꽃이 가경을 이루는 덕진공원, 동학농민운동 격전지였던 완산칠봉, 이태조의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의 모악산, 전통가옥의 멋이 살아있는 한옥마을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용마루 곡선이 아름다운 팔작지붕의 한옥마을과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시가와 호남평야가 한눈에 펼쳐지는 모악산은 특히 인상 깊었다.

얼마 전 부임 축하 차 찾아 온 지인들과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곳 음식 맛과 도시의 고풍스러움에 감탄한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정식의 깊은 맛깔과 전주천의 맑은 물, 한옥마을의 우아한 자태에 반해 가족들과 꼭 다시 찾아와 하룻밤 묵고 싶단다. 전주를 중심으로 음식과 소리문화가 발달하고 인심이 후덕한 것은 상대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먹을 거리가 풍부하고 여유가 있어 오랜 기간 그 맥을 계승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화의 시대 전주가 주역

우리는 경제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미래는 경제적인 부보다 얼마나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좌우된다. 오랜 시간, 소중한 문화를 잘 계승해온 전주지방이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을 확신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주에서 근무하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머무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나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전주의 문화를 더 깊이 체험하려고 한다. 그것이 공직자로서 맺은 인연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올 때는 깊은 맛을 몰랐지만 떠날 때는 이곳의 뿌리깊은 문화와 후덕한 인심을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전주인이 되고 싶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