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규수필가

 신문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다. 신문을 읽으면 시대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신문 속에는 세계 각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정보가 들어있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경영 쪽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신문에는 글맛을 통해서 표현되는 절묘한 세계가 존재한다. 신문은 방송이 시간제한으로 미처 다루지 못한 심층정보와 의견을 상세하게 전해준다.

  필자는 매일 주요 일간지 7개를 읽는다. 신문 읽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단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못 견딘다. 시간제약으로 다 읽을 수 없는 부분은 머리기사나 리드를 읽고 내용을 파악한다.

  신문은 고마운 정보매체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들을 쏙쏙 뽑아서 편집, 인쇄까지 해서 집 현관까지 배달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정보수집 신문이 가장 유용

  현대사회는 지식사회다. 아는 게 없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낙오되기 십상이다. 지식경영이라고 하는 것처럼, 기업의 운영뿐 아니라 한 가정이나 개인의 삶에서도 지식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지식을 어디서 얻어야 할 것인가. 물론 책에서 얻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지식을 한 묶음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 뿐 아니라, 읽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오늘날과 같이 바쁜 시대에 책을 찬찬히 읽을 만한 여유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정보원에서 지식을 얻어야 하는데 그중에서 신문이 가장 유용하다는 것이다.

  신문은 사실에 근거를 둔 창작에 가깝다. 신문지면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 상당수가 신문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한다. 영상 세대인 이들이 지천에 널린 볼거리와 즐길 거리의 유혹을 떨치고 재미없는(?) 신문을 읽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문만큼 최신 정보와 지식을 알기 쉽게 정리해 전달해 주는 매체가 흔치 않다. 따라서 신문 읽기의 필요성과 효용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침 일과를 세계의 신문 6~7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앨빈 토플러나 “미래를 덮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는 데 가장 필요한 지식의 원천은 신문이다.”라고 주장하는 존 나이스빗, “상상력의 근원이 신문이며 모든 지식과 정보를 신문에서 얻는다.”고 했던 백남준 등 세계적인 미래학자들과 예술가들은 모두 신문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신문은 ‘지식과 정보의 보고(寶庫)’이자 ‘사회와 세계로 열린 창’이라는 것이다.

  물론 종이신문 말고도 제 신문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무료로 기사를 읽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모니터 보다 인쇄 된 글을 읽는 게 편하다. 인쇄 된 글을 읽으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만 모니터로 읽은 글은 머리를 살짝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종이신문 보는 게 습관화되어서일까?

  실시간으로 사건 현장을 중계하는 듯한 인터넷 뉴스는 사실의 기술 이상을 전달하기 어렵기에, ‘행간(行間)을 읽는’ 맛이 없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기자의 입맛에 따라 맵거나, 달거나, 짜거나, 또는 싱겁게 변해 버리는 종이신문 기사야말로 되씹고, 곱씹고, 되새김질까지 할 만한 맛이 있다.

 하루 적어도 2~3개 신문 봐야

  신문도 어느 특정신문 하나만 보면 인성이 편협된다. 예건대 조선일보 보는 사람과 한겨레신문 보는 사람의 성향은 정 반대다. 두 신문은 사사건건 확연히 다른 논조를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느 한 신문만 읽으면 그 신문 논조에 길들여지기 쉽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등 여러 신문을 읽어야 많은 정보를 취합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시선을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지금의 경쟁시대에서는 적어도 중앙지 2개, 지방지 2~3개 정도는 봐야 신문을 제대로 읽는다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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