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교수
  마지노선(Maginot Line)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 1차 대전 후, 프랑스의 마지노(Maginot. A) 육군 장관이 대(對)독일 방어선으로 국경에 구축한 요새선으로, 완벽한 지하 시설과 당대 최고의 축성술을 사용하여, 10 년간에 걸쳐 구축(構築)한 방어용 장벽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 선택의 양단에 처할 때가 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이 놓치고 양보하고 포기해야할 경우가 그것이다. 만일 나에게, 내 인생에 있어서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설령 다른 것은 다 잃더라도 이것만큼은 끝까지 지켜가고 싶다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내 삶의 마지노선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오래 전의 일이다. 내 고향 남원(南原)에서 살 때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생하던 동생이 하루는 예고도 없이 밤차로 내려왔다. 우리 형제는 밤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 끝에 동생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 형, 사실 서울 생활이 정말 힘 들고 어려워,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면 나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힘이 나고 그 어떤 것도 다 견뎌낼 수 있어” 하며,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던 그의 서글한 표정이 생각난다.

 꿈을 쫓아 쉼 없이 달린 젊은 날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이젠 서로 분가하여 일가를 이루며 따로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의 이 시점에서 내 삶을 뒤돌아보고 추슬러 보아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요즘 들어 내가 제일 우선시하는 일이 가정, 곧 우리 집안의 화목이다. 젊었을 때는 가정의 화목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의 성취와 사회적 위상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때로는 어머니가 “애비야, 오늘 시간 나면 시골에 좀 같이 다녀 올 수 없겠냐.” 하셔도, “아니요, 오늘 아무개 교수님 만나 뵈러 가야돼요.” 하고 나의 사업과 성공(?)을 위해 앞만 쳐다보고 달렸다. 일가친척 간에 애경사가 돌아와도 어머니나 아내에게 맡기고, 아이들이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던 그 시절에도 나는 밀린 원고 작성과 제출해야 할 논문에 매달리느라 그들을 오히려 귀찮아 하고, 내 서재 곁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오로지 내가 설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일로매진했고, 나머지 가족들은 그러한 나를 위해 곁에서 항시 대기하고 거들어 주는 조력자쯤으로 여겨왔던 게 지난 내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일과 직장에 매달려 어찌 살다보니 어느새 환갑이 지나버렸다. 정년 퇴직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몸과 마음이 좀 처지고 한가하여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저 세상으로 가신지 벌써 10년이 지나버렸다. 두 딸들도 출가하여 각기 살림을 차려 나갔고, 막내 아들놈 하나도 제 일을 찾아 외국으로 나가고 없다. 36년 전 우리 내외가 결혼했던 신혼 시절 원점으로 다시 돌아 온 셈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원점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 둘, 그리고 우리 내외, 이렇게 다섯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내외 둘 뿐이다. 명분은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결국 내 성미에 맞춰 나를 위해 살아온 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출가한 아이들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그리 감격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니까 으레 그러려니쯤으로 생각한 것 같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아 왔는지! 한바탕 열심히 땀 흘려 일하다 이제 힘이 팽겨 잠시 허리를 펴고 둘러보니 어머니도 아이들도 그 사이 어디론가 다 가버리고 , 그 자리에 늙은 아내와 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내 삶의 마지노선 '가족'

 이제나마 남아 있는 가족들이라도 잘 챙겨가며 살아가고 싶다. 세속의 명리(名利)는 뜬 구름과 같아 무상(無常)하거늘, 그 어떤 풍파와 세상의 외면이 온다 해도, 나에게 따뜻한 가정, 무너지지 않는 가족 간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나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의 내 동생이 그랬듯이, 최소한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내 곁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 그 어떤 시련도 나는 두렵지 않으리라. 이것이 요즘 내 삶의 마지노선이다.

 내가 반드시 지켜내고픈 마지막 무너지지 않는 성(城), 그게 가족과 일가친척과 이웃 간의 사랑이다. 이창휘의 노래 <괜찮아요>에서, ‘수많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 지워지지 않는 사랑/ - 거기 그렇게/ 서 있어만 준다면/-내게 남겨진/ 그 눈빛으로/ 내일을 살아갈게요.’라는 가사처럼, 나에게도 아직도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내 가족과 직장과 이웃이 있는 한, 나는 남은 내 생을 그들과 함께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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