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학 교수

  동물의 세계를 보면 쿨(cool)한데가 있다. 새(鳥)들도 그렇고 백수의 왕 사자도 그렇다.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일정 기간 온갖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는다. 제 목숨을 돌보지 않는 동물들의 새끼 사랑이 더 없이 숭고한 데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 자라고 나면 어미와 새끼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미련 없이 서로 헤어져 저마다의 삶을 꾸려간다. 참으로 냉정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자식들이 이제 다 성장하여 혹은 결혼을 하여 독립할 때가 되었는데도 ‘자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 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래서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는 존재’ 그게 자식이다. 오죽해야 부처님마저도 「숫타니파타」에서, 자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했겠는가?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집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교 초기 경전 중에서

 자식에 집착하는 한국 부모

  한국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다.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를 10대에 독립시킨다.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립적으로 생활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시켜 주었는데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자식들이 아직도 있으니 문제다. 그런 자식들의 취직 문제, 결혼 문제, 그것뿐인가? 결혼을 시키고 나면 또 그것들이 밥이라도 먹고 사는지?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제대로 크고 있는지? 집 장만 문제 그리고 사업 자금 등등, 죽을 때까지 자식들 걱정에 끝이 없다. 한 번 맺은 인연의 고리가 부채가 되어 평생을 간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중생들의 고통을 일찍이 간파하시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경구는, 1990년대 초 공지영이 여성들도 이제 가정 혹은 남성의존적 삶에서 벗어나 독립된 존재로 홀로서야 함을 설파하여 당시 대학생들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소설의 이름이기도 하다.

 출가 수행자들에게 주는 이 법문의 본의는, 진리를 구하는 길에 인정이나 연정이나 혈육이 장애가 된다면 그것을 버려서라도 진리의 길을 가라는 뜻이다. 무소(코뿔소)는 아프리카나 인도에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 코뿔소만은 주둥이의 끝 위에 1개의 뿔이 달려 있다. 무리지어 다니는 동물이 아니라 주로 혼자 생활을 한다고 한다. 다른 뿔 달린 동물들은 뿔이 짝으로 있는데 인도 코뿔소만은 뿔이 하나다. 그런 무소의 뿔처럼 곧고 단단하고 우직한 마음으로 수행에 정진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 서양의 부모들처럼 평생 어느 정도 자식들이 장성한 뒤에는 그들을 내 보내야 한다. 자식의 노예가 더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독립심을 길러주어야 한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이 아닌 줄 안다. 하지만 부모도 그들을 독한 마음으로 내 보내야 하고, 자식들도 부모라는 둥지에서 벗어나 제 둥지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이 들어서까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남은 인생마저 힘들어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 일찍이 ‘죽순이 다른 것(대나무)에 달라붙지 않도록,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깨우쳐 주었으리라.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떠나는 긴 여정이다. 그 사이에 모든 것들이 인연에 따라 생(生)했다 인연에 따라 멸(滅)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결국 때가 되면 각기 제 길을 가야만 한다. 언제나 누구와 함께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오래 함께 할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단독자로 왔다 단독자로 가는 게 뭇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국 '공수래 공수거'

 인간의 삶이란, 태어나서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애착을 느끼며 일정 기간 그것을 끌어안고 사랑하다가 어느 때가 되면 또 그것들을 하나씩 품에서 내보내는 과정인 것 같다. 마치 불교의 십우도(十牛圖)에서 말하는 반본환원(返本還源)처럼, 결국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 본래의 나에서 시작하여 본래의 나로 되돌아오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우리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 앞에서 인간의 본성을 놓치게 된다. 나이가 들어 자식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석가모니의 경구가 떠올라 사람의 일생(生)과 그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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