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길본사 부사장

전국이 온통 벚꽃잔치로 봄을 들뜨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나라꽃인 무궁화는 잔치 상을 받기는커녕 초등학교 교과서나 대통령 휘장에서나 볼 수밖에 없는 박제된 꽃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 하씨는 무궁화를 이렇게 보고 있다.

보라에 가까운 빨강, 게다가 대낮에 햇살을 이기지 못하여 시들어 오므라지고 보니 빛은 한결 생체를 잃어 문득 창기 같은 입술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 잎 새의 아름다움이 있나하고 들여다보면 거세고 검푸른 것이 꽃 잎 새라기보다 나무 잎 새였다.

샤론 장미라고 해서 여기 어떤 신비로운 동경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화(國花)라는 것이 이렇게 평범하고 초라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무궁화가 어째서 우리의 나라꽃이 되었을까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나 하나 뿐이 아니겠다.

 나라꽃 무궁화 외면

문일평씨는 무궁화를 동방을 대표한 이상적 꽃으로 칭했고 유달영씨는 순화(淳花)즉 학명의 꽃말처럼 신의 얼굴처럼 아름다운 꽃이라고 무궁화를 찬미 하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로 미화를 시켜 본들 무궁화는 매력이 있는 꽃도 아름다운 꽃도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각 나라에는 나라꽃이 있다.

요염한 영국의 장미, 청초한 프랑스의 백합, 소담한 독일의 보리, 선연한 스코틀랜드의 엉겅퀴, 가련한 희랍의 앉은뱅이, 찬란하고도 담백한 사쿠라(벚꽃)는 일본의 나라꽃이다.

세상에는 이름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꽃이 많이 있다.

사람들이 철철이 옷을 갈아입듯이 계절도 순환 따라 꽃을 피워낸다.

봄기운이 이 땅에 들 때쯤이면 한라산 지리산 철쭉꽃잔치가 한창이 된다.

꽃은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이라는 것만 아니면 분명 감정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지자체마다 벚꽃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것은 못마땅하다.

일본의 나라꽃 잔치가 봄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겨우내 뒤집어 쓴 먼지도 털지도 못하고 주눅 들고 기죽어 서 있는 우리 꽃 무궁화가 더욱 초라해 보인다.

나라꽃을 바꿀 수는 없다.

밉상인 사람도 곁에 두고 자주 보면 예뻐 보이지는 않더라도 거부감은 없어진다.

밉다고 등 말고 돌리지 말고 다독이다 보면 미운 정이라도 들 것이다.

벚꽃은 대부분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가로수에는 도시인의 꿈이 있고 잃어버린 사연의 밀어를 속삭여 주기 때문에 가로수 수종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 그래서 벚꽃의 화려함이 가로수로 선택 1순위가 된 것일 것이다.

프랑스의 마로니에, 미국의 목련, 독일의 보리수, 그리고 이탈리아의 포플러, 나라마다 도시마다 제각기 다른 가로수의 특징이 있고  그것이 또한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무궁화를 가로수로 쓰기에는 그렇다.

 전주시 가로수를 이팝나무로

그러나 우리주위에는 벚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들이 많다.

전주시에서는 덕진 연못으로 가는 전북대 후문도로 가로수로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다.

하얀 꽃이 벚꽃보다도 아름답고 꽃의 수명도 벚꽃보다 더 길어 가로수로는 이보다 더 좋은 수종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시의 가로수를 전부 이팝나무로 수종을 갱신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가로수가 있고 책이 있고 그리고 여인이 지나간다.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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