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40분경에 한강을 가로지른 성수대교가 붕괴 됐다.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음해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사망자 502명 등 모두 15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전 국민에게 커다란 슬픔과 분노를 안겨준 두 사건은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쓴 ‘강남몽’은 바로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시작해 현재의 우리 삶을 규정하는 역사적 출발점으로 거슬러올라가 수십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강남몽’은 한 권의 소설에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와 오점투성이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커다란 스케일을 자랑한다.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 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설에 녹아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그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쏘드들은 ‘과연 황석영’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속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는 수많은 인물군상이 맞물려 ‘강남’으로 상징되는 남한 자본주의의 일면을 그려낸다.

일제의 정탐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대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백화점 붕괴로 몰락한 김진의 생애는 ‘꺼삐딴 리’보다도 영악한 처세와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골 여상을 졸업한 뒤 고급요정과 쌀롱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었다가 무너진 백화점에 묻히는 박선녀나 70년대 강남 개발 시기에 부동산 사기로 돈을 버는 심남수 역시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홍양태 강은촌으로 대표되는 조직폭력배의 일대기는 개발독재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한편 무차별적인 개발의 상흔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의 참혹한 현장을 거쳐온 임판수 부부와, 그의 딸로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다 붕괴 때 묻혔다가 구출되는 임정아의 시선을 통해서는 삶에 대한 뭉클한 감동을 던져준다.

창비(창작과비평사), 값 1만2천원. /이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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