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세계소리축제>가 열렸다. 소리를 주제로 하는 문화예술 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져 짙어가는 가을을 향기롭게 한다. 이 풍요로운 소리향연으로 나뭇잎들은 오색빛깔로 치장하다가 정해진 길을 따라 바람의 여행길에 나서면, 또 한 해가 그렇게 지고 말리라. 더 늦기 전에 이 가을향연에 동참하여 우리네 삶의 앞자락을 오감으로 물들여 볼 일이다.

10월 1일 모악당에는 개막식 특별기획공연 ‘천년의 사랑여행’이 무대에 올랐다. 백제를 떠난 사랑의 함선이 세계 여러 곳을 누비는 여행이었다. 사랑여행의 발상은 백가[百]를 제도[濟]했다는 백제(百濟)에서 비롯한다. 이름은 이름의 구실을 다할 때 아름다운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뱃머리에 ‘濟’를 선명하게 새기고 떠나는 소리여행의 함의가 재미있고 뜻 깊다. 그것이 역사를 반추하거나 현실을 조응하건, 아니면 미래지향적 웅비를 담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여행은, 더구나 오감체험으로 즐기는 소리여행은 이 가을을 향기롭게 채색하는 좋은 문화체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실은 범선의 소리여행은 오감체험이었다. 중국 소주지방에 들러 전통무용단과 악단을 만나 저들의 무용과 음악을 즐긴다. 이방인에게는 생경하겠지만, 저들의 예술양식이 문화적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대만 고산족을 찾는다. 이들의 전통무용과 음악을 보면 어디까지가 생활이고 예술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긴 생활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생활이 되는 것은 문화의 특질이 아니던가.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맞은 전통무용은 섬세한 춤사위로 정중동(靜中動)하는 내면을 표출하는 듯했다. 온몸으로 응축된 내밀한 역동성을 절제된 동작과 손끝 발끝에 모아 전하는, 조용하고 느린 동작은 가히 선의 경지라 할만 했다.

‘신비한 나라에서 온’이라는 소개멘트가 인상적인 인도 전통무용단을 찾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색적이라는 호기심과 함께 표현과 감상의 경로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즐거움이었다. 뜻을 담지 않은 가성(假聲)과 소리시늉말[의성어-擬聲語] 그리고 이를 온몸으로 표현해 내는 연로한 남녀 무용수들의 동작(그것은 무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화(手話)나 족화(足話)에 가까웠다), 인도의 전통 현악기 하나와 북 하나, 그리고 무용자의 동작-소리와 대응되는 남녀 소리꾼이 이들 연주단의 규모다.

 <가득하다/ 차향기 푸르게 맴돌다/ 마침내 돋아나는 새잎들로/ 묵은 책들 푸르다 소리내다// 한두 번 손길/ 찻잔에 머물던 바흐/ 혹은 서툰 가수의 연주/ 음정 불안한 현악으로 그윽하다/ 묵은 계절을 반주하자/ 과일향기 나다/ 인생노래는 하얀 단조/ 기쁘지 않는 이별가에도/ 보라색 이정표 세우다 놓다// 돌아가자 오히려 돌아오는/ 무궁동(無窮動) 카논/ 악사 떠난 자리마다/ 떠나지 않는 온음표들로/ 가득하다.>-졸시<여운-餘韻>전문
 
의사소통-의미전달의 수단이 반드시 언어만은 아니다. 더구나 음성 언어의 취약한 전달 수단만으로, 또는 문자언어의 그 협애(狹隘)한 표현수단만으로 복잡미묘하기가 개미굴 미로이거나 노거수 느티나무 이파리 같은 사랑의 감정을 어찌 다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숨결바람으로도 다치기 쉽고, 안개춤사위에도 흩어지기 쉬운 사랑의 감정을 어찌 문자-음성언어만으로 교류할 수 있을 것인가? 길은 오감에 있다.

색깔로 칠해지는 소리, 춤사위 너울대는 말, 살갗을 간질이는 언어, 후각으로 미각으로 오는 ‘맵고 시고 떫고 짜고 달콤한’ 사랑의 오미(五味)는 오감(五感)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사랑의 오미를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여운이 강한 가을향연이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