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원호 건축사

며칠 전 용담댐 광장에서는 진안군과 수자원공사 주최로 “용담댐 담수 10주년 기념 수몰민 초청 위안잔치”를  준비하여 고향땅을 잃어버린 수몰민들의 마음을 일부나마 보상해 준 의미 있는 날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악과 가수들을 초청하여 수몰전 영상과 그림전시로 옛 고향의 향취를 느끼게 한 날이었다.

이와 때 맞춰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짧은 일정으로 대면의 맛만 보고 헤어지는 안타까운 장면을 보면서 용담댐 수몰민들의 애환과 비교해 보았다.

남북한 이산가족은 비록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장시간이 요구되지만, 남북이 통일되면 그립던 고향이라도 밟아 볼 수 있으련만 용담댐 수몰민들은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옥토를 물에 잠긴 채 영원히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차이점이 있다.

행여 용담 담수가 빠져 옛 집터와, 땀방울이 스며들었던 전답이 보인다면 그래도 그곳을 보며 위안을 삼고 느껴야 한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후 57년 동안 헤어졌던 남북이산가족의 아픔과 설움을 누가 대신 해줄 수 없지만,  해마다 수명을 다 하는 고령자들의 소원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정례화된 만남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영원히 밟을 수 없는 고향땅

뉴스에서 본 이산가족의 상봉과 함께 용담댐 수몰 10주년을 기념하는 위안잔치를 보면서 한국수자원 공사는 수몰민들에게 적정한 보상금으로 대체 하였다고 자부하겠지만, 수십 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땅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그 마음을 몇 푼 보상금으로 대신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갑자기 생긴 억대의 보상금으로 순식간 탕진한 주민도 있었고, 그 돈으로 타 지역에 집단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도 있지만,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수몰 전에는, 사계절 아침에 일어나면 일터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부터 저녁 늦게 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피땀 어린 내 땅과 흙냄새 나는 내 집 그리고 정든 내 이웃의 형제 친구가 있지만, 수몰 이후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수몰민들은 어디하나 육신을 맡기고 있을 만한 곳이 없다.

어딘들 정들면 고향이라고 하지만, 농사지을 만한 땅도 없고 그럴 듯한 직장도 없는 도시에서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수몰민들의 마음을 알리가 없는 수자원공사는 용담댐으로 내어준 땅이 정부 소유권으로 바뀌면서 마지막 삶의 터전인 수몰민 정착촌에서 마을 회관이나 소득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몰민의 한사람으로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간접보상 토지는 임대경작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용담호 주변 옥토 100만평 이상이 물에 잠겨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지만 수변지역에 있는 간접적인 토지에  생계유지를 위한 경작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비록, 보상비는 받아 정부기관으로 땅을 넘겨주었지만 수십년간 땀방울이 스며든 정들었던 경작 토지에 수몰민 주변 지역사람들이 임시적이라도 경작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생계유지와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원히 밟을 수 없는 고향땅

따라서, 수자원공사는 비록 보상금으로 대체하여 정부소유의 땅으로 되었지만, 용담댐 물로 가득한 임야나 여유 공지를 수몰지역 주민들에게 임대경작만이라도 할 수 있게 조례를 제정 해 주거나 국가에서 허락 해 주었으면 한다.

수변지역 자투리땅을 무단경작이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부득이 경작 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을 수자원측은 배려하여 용담댐 수몰민들을 범법자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38선으로 갈라놓은 남북한 이산가족도 가끔씩 중립지대에서 만나게 해 주는 아량으로 혜택을 주듯이, 한때는 수몰민들의 애환이 서린 땅이었지만, 소유자가 바뀐 이 시점에서 그래도 정이 담뿍 들었던 그 땅을 다시 한 번 만져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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