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관용어가 실제 의미보다는 수사의 한계를 지닌 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필자가 직접 겪은 또 다른 체험으로부터 비롯한다. 필자가 고교시절 유난히 따랐던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어찌 보면 시를 좋아하셨던 청년교사의 가르침 덕분에 필자가 현재 시단의 말석에서나마 무명시인 행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영향으로 필자는 시단에 등단도 하고, 한눈팔지 않고 시문학에 매진하다 보니 지역문인단체의 책임도 맡아 문학생활을 엮어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단체의 책임을 맡다보니 회원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문학 환경의 활성화를 위하여 문학상을 제정하고, 그에 걸맞은 문학상금도 마련해서 시상해야 한다. 백면서생 출신인 필자의 처지로 볼 때, 서정시 몇 줄이나마 써내라면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어떻게 꾸며내 보겠는데, 거액의 상금을 부상으로 문학상을 시상하는 일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자생적인 문화?예술단체인 문인협회에 무슨 재정적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회비라고 해봤자 3만 원에 불과하니, 문예진흥기금의 도움을 받아 매년 3회 문예지를 발행하고, 기타 단체의 독자적인 문학행사를 추진하는 형편이다.

이러니 외부자금을 끌어들이지 않고 문학상금을 마련하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던 차에 난관을 돌파할 수 있도록 실재적인 도움을 주신 분이 바로 앞에서 밝힌 고교시절 이종희 은사님이시다. 당신께서도 시단에 등단하신 시인이자 문인협회의 회원으로서 제자의 하는 일을 눈여겨보셨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문학상금으로 곤란을 겪는 제자의 처지를 해결해 주기 위해 당신의 용처에서 ‘전북문학상’의 상금을 쾌척하겠다고 제언하셨다. 정재(淨財)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서는 이를 ‘전도나 사회사업?자선사업 등을 위해 기부하는 재물’이라 했다.

그 재물의 형성에 뜻이 주어진 말이 아니라, 재물의 쓰임에 뜻을 맞춘 풀이다. 그러나 스승께서는 달리 영리를 취득할 무슨 사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부부교사로 봉직하다 정년퇴임하신 분이다. 그러니 기부하는 성금의 축적도 그야말로 깨끗한 재물[淨財]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귀중한 재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매년 1천만 원씩 삼년이나 기부하시겠다니, 제자 된 필자로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디에 계시든지/ 그렇게 푸른 잎을 피우시기만 하시어도/ 연잎에 고이는 수정 말씀을 듣습니다. / 연꽃 흔들고 가는 바람자락에/ 가난마저도 향기였음을 전해주는/ 맑은 인정/ 그런 날들이 어디 따로 있기나 하였던가요?/ 못난 자식일수록/ 칭얼대는 소리도 향기를 풀어 달래시고/ 앞날의 울타리에 걸쳐 있을/ 젖은 구름장도 걷어내 말려주시며/ 맑은 날을 예보하셨지요.(후략)> -이동희「맑은 날, 연꽃 흔드는 바람처럼」의 전반부   올해로 그 두 번째 전북문학상을 시상하였고, 물론 상금도 부상으로 주어졌다.

세상은 성공한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기려 그런 정재를 쓰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여긴다. 그러나 제 앞가림도 못하는 제자는 거꾸로 스승의 은혜를 염치 좋게 받아 누리고 있다. 청출어람은 고사하고 그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 제자 된 필자의 행색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은사(恩師)님의 총애에 그저 못난 제자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 게으른 시심에 사랑의 매를 내리시는 방법이 따로 있음을 귀띔해 주시는 것도 같다. 한눈팔지 말고 시의 길로 매진하라는 따갑지만 은은한 향기가 남루한 나의 삶을 촉촉하게 적셔주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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