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삼상19:12)고 합니다. 사울은 범죄의 길에서 떠나지 못하고 또 다시 다윗을 죽일 흉계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전날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었는데(1-7), 이번에는 사울의 딸 미갈이 구원해 주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처럼 순수하고 고상한 마음을 지니지 못했지만 그의 탈출을 도와주었습니다.

미갈은 자기 남편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사울)의 흉계를 미리 알고 밤중에 다윗을 창문에서 달아 내려 도망하게 하였습니다(12절). 사울의 사자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미갈은 창문으로 다윗을 도피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노리는 자들의 손을 피해 창문으로 도피한 유사한 경우가 여호수아 당시의 여리고 정탐꾼(수2:15), 초대 교회 당시의 사도 바울(행9:25, 고후11:33) 등의 경우에서도 나타납니다. 다윗이 처한 그때의 상황이라면 그는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기 있는 자들에게 도망이라는 것은 싸우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양심의 소리가 후자보다 전자를 명령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군대의 사령관은 때로 적과 정면 대결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느끼면서도 현재 후퇴하는 것이 훗날 인명을 덜 손상시키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요새를 공격하기를 원하면서도 만약 그가 조금만 기다린다면 조금도 피 흘림 없이 적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 때가 있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급히 공격을 실행하는 것보다 비겁하다는 비난을 듣는 편이 더 유익한 것이며,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의 추격을 피한 것을 제외한다면 그의 생애 단 한 번도 적에게 등을 돌리거나 후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여자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까지 도망간다는 것은 아예 그 자리에 남아서 죽기까지 싸우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정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사울에게 정면 도전했다면 그는 많은 지지자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전 이스라엘에 내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자신에게는 명백하게 수치스러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의 나라의 유익에 크게 공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 자기 가정에도 몸을 붙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창문을 통하여 도망한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품으로 피한 셈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느낄 때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세상의 이목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그의 나라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고 행하며 사명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문)

 /강성찬 목사(전주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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