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싸우는 부부가 건강한 부부라고들 이야기 한다. 결혼 생활 10년차까지도 싸우는 부부가 무슨 건강한 부부냐고 반론을 했었는데 20년이 넘어가니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싸우는 것도 체력 소모라는 생각에 슬슬 싸움도 피하고 분쟁거리가 되는 대화는 서로 피하게 되었다. 오래 살다보니 조금씩 안 맞는 부분은 양보도 하고 맞춰주기도 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론 없는 싸움에 서로 지쳐 싸움을 피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싸움도 큰일 때문에 싸운다면 그래도 시간이나 체력소모가 아깝다는 생각을 덜하겠지만 부부 싸움은 늘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고 또한 싸움이 시작되면 항상 지난 일부터 다 끄집어 나오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부부는 가끔 싸움을 한다. 요즘 우리부부의 싸움 발단은 약속이다. 평상시에는 말이 별로 없는 남편이 술자리에서 어느 정도 주량이 넘어가면 약속을 남발하는 것이다. 작년 화이트데이를 얼마 안 남겨 놓고 한 술자리에서의 약속은 내 카메라였다.

500만원이 넘는 최신형 카메라를 사주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고가인 카메라를 선뜻 사준다는데 마냥 좋아만 할 수는 없어 잠시 사양도 해 보았다. 그런데 어차피 사진을 시작했으니 좋은 것으로 배우라는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화이트 데이에 깜짝 선물로 사주려고 그날을 기다리나 했는데 그냥 지나가고 그달 말일 경에 결혼 기념 일이 있어서 또 그날을 기다렸는데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참고 있기엔 너무 시간이 지난 것 같아 먼저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런데 남편은 자기가 언제 그 비싼 카메라를 산준다고 했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다. 만약 그때 같이 있었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결국 남편에게는 선물 받지도 못하고 괜히 홧김에 바꾸려고 생각도 안했던 카메라를 내 비상금을 탈탈 털어 바꾸고 말았다.

몇 번 그런 식의 술자리에서의 약속에 기대했다가 실망으로 이어지는 기분을 맛 보고나니 이젠 술자리에서 하는 약속은 아예 듣지도 않고 말도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하면서 괜히 남 앞에서 마누라 위하는 척 한다고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지인 한분이 내게 그러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해주고 싶었으면 술만 먹으면 그런 소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다르게 생각해보니 내가 마음 상하는 것도 상하는 것이지만 해주고 싶지만 선뜻 다 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야 오죽할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자 오히려 남편이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취미생활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밤새 거실에 텔레비전을 켜놓고 장기며 바둑을 보는 게 취미라면 취미이다. 반면에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거의 다 하고 살았던 것 같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억지스러운 것을 요구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픈 것은 죽어도 해야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나쁜 소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견디질 못한다.

그런 까탈스러운 성격에 남편하고 죽을 때까지 연예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 하는 욕심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큰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싸움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언제까지나 연애감정으로 날 대해주길 바라는 철  없는 내 욕심이 이제까지 우리 부부 싸움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김한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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