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울<84>

 

틀렸네 틀렸어

그대 깊은 영혼

여울물처럼 맑게 흐른다 해도

틀렸어

예술을 한다고 뒷골목 길게 걸어보지만

고호,

그림 속 '밤의 카페'에 덧칠하고서는

어디 가시는가

눈을 시리게 마음이 시리도록

내 마음에 위선의 획을 긋는

그대 고뇌여.

 

-시소향의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을 들으며>전문

 

바흐의 음악은 종교다. 그러므로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신앙(信仰)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의 신앙에는 속된 것이 왜 속된 것인가를 밝히는 열쇠가 있다. 바흐의 음악에는 위선이 왜 위선이 되는가를 웅변하는 목소리가 있다. 더구나
그의 반주 없는 절대음감(絶代音感)의 경지 ‘첼로 조곡’에는 세상의 어법으로는 말고, 예술의 감성으로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고뇌가 있다. 고뇌는
고뇌로 풀어야 한다. 번민은 번민으로 풀어야 한다. 바흐의 종교에 입문하여, 그의 음악으로 신앙하는 일은 그래서 아름다운 슬픔, 슬픈 힘이 된다.
내 인생에. 그 힘으로 세속적 위선의 탈을 벗긴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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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85>

 

바람 한 톨

접어들고

떠나가는 막차 길

 

세월의

뒤란에는

산매화만 흐드러져

 

옹달샘

가연(佳緣)한 정에

굴뚝새가 시를 쓴다.

-진상순의 <흔적>전문

 

시는 문자로 쓰지 않는다. 시는 글자로 쓰지 않는다. 바람으로 시를 쓰고, 향기로
시를 얻는다. 흔적은 상처만이 아니다. 흔적이 아픔만은 아니다. 바람 휭 남겨두고 막차로 떠난 이별의 흔적이 시를 낳는다. 아련하게 묻어나는 산매화
냉기 서린 겨울 형기가 시를 피운다. 그래서 겨울 내내 속만 태운 굴뚝에선 또 다른 사랑의 흔적이 시를 낳는다. 겨울새 굴뚝새는 아름다운 흔적으로
시를 운다. 그래서 상처나 아픔만이 때로는 훈장이 될 수 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인연[佳緣]이 될 수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86>

 

대웅전 뒤란으로 붉게 핀 동백꽃

도솔천궁 미륵불께 깨달음을 열고저

천리 길 멀다 않고서 찾아 나선 보살승(菩薩僧)

 

선운산 도량에서 와운참선(臥雲參禪)하는데

땡땡이 중 겁탈에 백팔번뇌(百八煩惱) 소멸코저

목매어 붉은 피 토하며 열반(涅槃)하신 넋이여

 

-김승규의 <선운사 동백꽃>전문

 

일찍이 미당 시인은 ‘막걸리집 육자배기 가락으로 남은’ 선운사 동백꽃을 노래했다. 미당의 고향 후배 김승규 시인은 또 다른 세계에서 동백꽃을 피운다. 깨달음을 향한 불제자의 이미지로 동백꽃을 피운다. 하기야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이나,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자 하는 수도자의 집념이 무에 다르랴. 그 열정으로 보아 무에 다르랴. 그 붉게 타오르는 구애와
구도의 열기로 보아서 무에 다르랴!더구나 그 사랑의 성취 개화의 기쁨이나 득도의 절정 열반경의 꽃피움에서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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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87>

 

천년을 살아야 구멍이 나는지

나무는 스스로 구멍을 뚫었다

그걸 아는 바람이

먼저 그 마음을

터 주었다

 

-김희주의 <나무와 바람>전문

 

고대의 시인은 주술가(呪術家)였다. 그래서 고대의 시인은 온갖 생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찌 생물들뿐이겠는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인간사 맺히고 엉긴 일들을
잘도 풀어냈다. 말만 하면, 기도만 드리면, 주술만 걸면 인간사 풀리지 않는 일들이 없었다. 제정 일치 시대 최고의 스타는 그래서 시인이었다.
나무와 바람을 다루는 현대의 시인이라고 어찌 주술가가 될 수 없겠는가! 더구나 스스로 현대의 성지(聖地)-농촌을 지키는 마지막 지킴이를 자처하는
김 시인이야말로 바람과 나무를 부릴 줄 아는 몇 안 되는 참시인이다. 그래서 바람의 언어를 읽고 나무의 마음을 다독거릴 줄 아는 몇 안 되는 참시인이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88>

 

울타리 뒷길에는

창이 걸린 오두막 한 채,

싸락눈 내리는 으슥한 저녁

희미하게 창호지를 통과하는

호롱불 새어나오는 소리,

외눈에 찔리듯 들어오는 건

옹알거리는 갓난이 재롱

내외는 천당보다 높은

함박웃음.

 

-송재옥의 <함박웃음>전문

 

감정의 편차가 크면 클수록 그 결과적 현상 또한 격졍적인 것이 되기 쉽다. 슬픔과
기쁨의 편차가 크면 클수록 눈물이나 웃음의 농도가 달라진다. 울타리 뒷길과 오두막, 으슥한 저녁과 호롱불 밝힌 가정, 갓난아이 재롱과 함박웃음
등은 감정의 편차를 보여주는 대립적 구도에 놓여 있다. 그래서 ‘함박웃음’은 겨울밤을 뚫고 천당까지 다다를 수 있다. ‘홈 스위트 홈’이라는 서양에서
유래한 노래가 우리들의 미감을 자극하는 것은 그 노래에 담긴 음악성이 전부는 아니다. 그 노래가 보여주는 ‘평화와 안식의 그림’ 때문에 우리들의
가정 노래가 되었다. <함박웃음>의 그림이 서양의 가정그림과는 다르면서도 확연한 우리 삶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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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89>

 

먼 강물 굽이굽이 휘돌아 올 때

나의 뱃전을 맴도는 흰 물결 있어라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그 물결을

바다 끝까지 가물가물 안고 가리라

 

나의 배가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안개꽃처럼 그 물결을 안고 가리라

 

-송하선의 <아내>전문

 

그렇게 사시고 있다. 그렇게 인생을 그리고 있다. 서정적 화자의 발언이 시의 애매성(曖昧性)을
깊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화자의 발언이 시적 함의를 선명하게 규명하는 경우도 있다. 미학적 깊이는 함축성의 심도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오묘한
세계다. 선명한 시적 이미지가 미의식을 단순화하여 그 깊이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아내>는 후자의 경우로 안성맞춤이다. 항해가 계속된다는
것은 곧 뱃전에 하얀 불결이 일고 있음을 말한다. 바다 끝이 어디일 것인가. 묻지 않아도 안다. 안개꽃이 대답이다. 안개꽃이 하얗게 나의 뱃전에
부서지는 동안 항해는 계속된다. 그래서 부부를 실과 바늘이라고 했으며, 그래서 부부를 배와 물(바다)라고 했다. 그 결백으로 부서지는 아름다움을
일러 우리는 ‘사랑’이라고 한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90>

 

깨어나는 것까지 외로움이라면

눈감으면 떨어지는 그대의 눈물

 

반짝이는 망울마다 꽃잎이 지고

안개 낀 길을 따라 멈춘 시간

너의 눈빛으로 남은 샛강의 밤

 

모든 날들은 그대로 서서

다시 태어나는 따뜻한 얼굴

보이는 것 하나 없어도 보이는 눈물

다시 떠오르는 나의 하얀 물무늬

 

-임승천의 <그대의 눈물>전문

 

이를테면 밤의 바닷가나 밤의 호숫가에서 서성이며 떠나온 출발지를 생각한다고 하자. 그 출발지를 현세의 어떤 인연의 한 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아니면, 구체적인 별리(別離)의 순간을 떠올려도 좋다. 그랬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허로운 상심의 흔들림뿐이다. 그것을 굳이 눈물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것이 눈물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안다. 그 출발지를
항상 원초적 탄생의 비밀에 채널을 맞추면 볼 수 있는 영상이요, 돌이킬 수 없는 억겁의 이별이 낳은 또 하나의 고독-나의 현존이기 때문이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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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91>

그날 개울을 건널 때

머슴애의 목덜미를 끌어안던

얼굴이 희고 말갛던 계집아이는

지금 어느 세상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어느날 여리고 풋풋한 머슴애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고 있다면

서슴없이 등을 내밀어 주려는데

살아가기 고단하고 서글플 때

그도 그렇게

내 목덜미를 힘주어 끌어안을까

 

-김오민의 <소나기>전문

 

산다는 것은 때때로 감성의 소나기를 맞는 일이다. 알콜의 힘을 빌려 몸의 뒤틀린
비명을 스스로 듣고자 하는 것도 실은 감성의 소나기에 내맞긴 자발적 소외에 다름 아니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집값보다 비싼 음향기기들을 들여놓고
온몸으로 음향의 소나기를 맞는 것도 알고 보면 결국 생존의 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소설의 허구가 삶의 현실이 되기를 꿈꾸는 것도 실은 감성의
소나기를 맞고자 하는 예민한 감도를 지닌 미적 도굴꾼의 삶의 방식이다. 더구나 이상기후로 소나기가 아니라 극심한 가뭄이거나 가혹한 홍수만이 전부인
이 무미건조한 시대에 ‘소나기적’ 감성의 빗줄기를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그래서 온존하게 가꾸어온 내 생을(목덜미) 송두리째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92>

 

비에 젖어 울까요

어둔 밤에 몸 숨기고 울까요

새소리마저 잠겨버린 이른 새벽

왼밤 지새던 시간이 문밖에 있습니다

서식하던 저녁나절의 틈새로

뿌려진 혈흔은 내 것입니다

앞사람과 곁사람이

미리 소유의 늪을 넘었습니다

진동하는 비린내에 어찌 할 바 모릅니다

비에 젖어 울까요

어둔 밤에 몸 숨기고 울까요

 

-허소미의 <고백>전문

 

이미지 군(群)이 범람하고 있다. 우선 습기 눅눅한 감각이 어둠이라는 빛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화자의 처지를 궁색하게 한다. 이어서 사라진 소리의 이미지로 소리를 떠올려서는 시간의 이미지와 결합시켜서 화자의 고독을 허밍하게 한다.
혈흔이라는 섬뜩한 이미지는 늪과 비린내라는 후각적 이미지와 결합하여 소유하지 못한 전투의 어떤 실패담을 상상하게 한다. 결구(結句)는 다시 기구(起句)를
반복한다. 정리하면, 궁색함과 고적함이 상실의 아픔으로 이어지고 있는 생존의 한 단면을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문학은 ‘혼자서 할 말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만 들려줄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다 듣고 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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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93>

 

사막에서

가시 돋친 풀을 만나다

가시에 찔린

낙타의 핏방울인 양

빨간 꽃을 왕관처럼 쓰고

모래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낙타풀

 

낙타풀에게 묻는다

“사막을 건너는 법은?”

“온몸에 가시 달고 모래 속에서도 실하게 집짓기”

사막에도 빨간꽃이 피어 있었다

-추명희의 <낙타풀>전문

사막에도 생명이 있다. 모든 생명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피를 먹고 핀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왕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처절한 생존의 사투를 일러 우리는 생활이라 한다. 암유(暗喩)는 매우 효과적인 말하기 방법이다.
‘사막?가시?핏방울?빨간 꽃?왕관?모래 바람?낙타풀’ 모두가 암유된 관념을 형상화한 시적 형상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낙타인가, 풀인가, 아니면
낙타풀인가? 세상이 사막이라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러나 우리들 스스로 ‘사막’이 되어 가는 이 시대에 어디서 사랑을 잉태하고 있는 ‘낙타풀 빨간꽃’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사막을 꽃밭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화자는 암유하고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시여울<94>

 

어느 날은

처음 문을 여는

꽃향기로 오더니

오늘은

저리 고운 노을이다

 

재되어

날아가기 전에

한 줄 詩로

나를 부르렴.

-전재복의 <편지>전문

 

인생은 한 장의 편지이다. 참 아름다운 편지이다. 인생행락 백년이라고 했다. 누구는
인생을 일러, ‘탄생의 출발역에서 희망과 절망의 간이역을 지나 죽음의 종착역에 이르는 여행’이라고 했다지만, 이 시의 화자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인생은 ‘향기로운 꽃향기의 출발역에서 빛깔 고운 노을역에 이르는 편지’라고 고쳐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한 줌 재가 되거나 바람처럼
날아갈 향기마저도 붙잡아둘 수 있는 미덕이 있음에랴, 이 편지 인생이 어찌 아름답고 의미롭지 않겠는가! 그 미덕이 곧 시(詩)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변의 미덕-시정신에 있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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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95>

 

창밖에 눈꽃이 피어 있다

이럴 때면 나는 하나씩?

내 마디를 끊는다

작년에는 담배를 끊었고

금년에는 술을 끊었고

명년에는 무엇을 또 끊을 것이다

허세 같은 하얀 생명이

숙명처럼 피어 있을 때

나는 나의 소유를 잘라내며

과잉된 모습을 지우고 있다

 

-최만산의 <눈꽃>전문

 

여백이 실상이 되고, 실상이 공간이 되는 한국화의 기법이 돋보인다. 눈꽃이 피었는데,
오히려 무엇인가 지워지고 있는 모습을 그려낸 솜씨가 그렇게 보인다. 눈꽃은 꽃이로되, 보여주는 꽃이 아니라, 감추어 주는 꽃이 된다. 인간의 몽매함으로
불리는 부질없음을 지워주고 가려준다. 담배나 술로 표상된 함의(含意)는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문명한 무지’에 대한 질책으로 읽힌다. 가장 문명화한
영장류인 인간이 결국은 자신의 허망한 모순마저도 극복하지 못하는 추한 모습을 ‘눈꽃’이 고맙게도 가려주고 있다. 이 문명 과잉한 과포화 상태의
시대적 징표들을 가려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이 오면, 눈꽃이 피면 그렇게도 좋아하나 보다.   

-해설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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