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한 소방서에서 구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소방공무원 박모(여·42)씨는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매번 가슴을 졸이게 된다. 행여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다. 업무 특성 상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 많다보니 부득이하게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종종 연출되곤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 상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자동차로 분류되는 차량들은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도로의 중앙이나 좌측부분을 통행할 수 있으며, 동법에 의해 정지해야 할 경우라도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정지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소방기본법 또한 소방자동차의 우선 통행 등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소방공무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긴급자동차라 하더라도 교통사고 처리에 있어서는 법 규정이 일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유에서다.

실제 박씨의 동료 소방관 김모(42)씨는 최근 환자를 긴급 후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김씨는 지난 1월 12일 오후 3시 14분께 심정지 환자 강모(57)씨를 태우고 익산시 영등동 전자랜드 사거리를 지나던 도중 구급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의 한 세차장에서 세차 도중 심장이 갑자기 멎은 강씨를 익산 원광대학교병원으로 후송하는 길이었다. 적색 신호에 사거리로 진입한 구급차는 사거리 오른쪽에서 직진하던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뒷부분을 들이 받혀 뒤집히고 말았다.

이 사고로 구급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응급구조사, 환자 강씨의 보호자 등 총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어린이들과 교사, 운전자 등 통학차량에 타고 있던 탑승자 총 7명은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당시 어린이집 통학차량도 황색 신호를 받고 직진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적색 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한 구급차량의 과실이 더욱 커 운전자 김씨가 사고에 대해 전반적인 책임을 져야 할 형편이다. 사고 처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사고처리에 대한 비용은 보험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함께 내려지게 된다.

특히 사고에 따른 벌점은 김씨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이다. 소방차량 운전 및 조작을 조건으로 임용된 김씨에게 운전면허는 필수조건이기 때문. 벌점으로 인해 운전면허에 대한 취소나 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될 경우 이는 또한 소방공무원에게 징계의 사유가 되기도 하며, 심할 경우 면직처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교통사고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피해자에 대한 합의 역시 운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상의 정도가 심하거나 사상자가 다수일 경우, 운전자뿐 아니라 구급차에 함께 탑승한 소방공무원들이 경제적 부담을 함께 지는 사례도 더러 있을 정도다.

이를 비단 해당 소방공무원 개인에 대한 불이익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소방공무원들이 교통사고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구급활동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도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도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구급 활동 중 발생한 사고로 동료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라며 “소방공무원들이 신속한 구급 활동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익기자 wh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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