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민주당 최고위원

지난주 오랜만에 단골 양복점에 갔다. 단골이라지만 한두 곳을 이용한다는 뜻이지, 자주 맞추는 편은 아니니 양복점 입장에서 볼 때 우수고객은 아닌 그냥 단골인 셈이다. 그런데 양복점을 찾아가는 것부터 차질이 빚어졌다. 점포를 이전했다고 했다. 다행히 전화번호는 안 바뀌어 어렵사리 찾아갔다. 예전에는 큰 백화점에 입주한 제법 이름 난 양복점이었는데, 옮긴 곳을 보니 가게 이름도 바뀌었고 가게 터도 예전만 훨씬 못한 자리였다.

양복점 주인은 나를 반기더니, 입고 간 옷을 보며 이정도 낡았으면 그만 입으라고 한다. 어차피 새 옷을 맞추러 온 길이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헤진 것은 아니었기에 무심코 ‘근검절약해야지요’라고 답했다. 주인은 내 말에 정색을 하고 ‘소비 좀 하시라’고 한다. 장사가 안돼 가게를 줄여 가뜩이나 속상한 주인한테, 내가 근검절약을 이야기했으니 별로 유쾌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옷 구매 지가벼는것도 사치

6월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지수’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이달 중 102로 전월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CSI가 기준치인 100을 밑돌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응답자가 더 많다는 의미이고 100을 웃돌면 그 반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계부채가 한국은행 통계로 지난 1분기 1,006조다. 시한폭탄이 이제 뇌관에 불까지 붙은 형국이다. 문제는 소득은 안 늘어나는데 빚만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가계 부채상환 능력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4분기를 제외하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악으로 추락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데 빚은 늘어가고, 전세값과 물가는 폭등하고, 일자리는 불안하고, 통신비와 차량유지비, 사교육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것이 대부분 국민의 살림살이다. 옷 한 벌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은 사치가 돼버린 것이다.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내고, 무역과 수출도 사상 최고의 실적이라는 화려한 경제지표와는 달리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은 이렇게 팍팍해지고 있다. 경제지표와 국민의 실질적 삶이 동떨어진 지금의 현상,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정권의 ‘나쁜 경제’가 바로 그 원인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에 대기업과 부자에게 혜택을 주면 그들이 지갑을 열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본다는 ‘낙수 경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없었다. 밑으로 떨어진다던 혜택은 양복점과 같은 자영업자나 서민 중산층까지 미치지 못했다. 대기업과 부자에게만 고스란히 혜택이 돌아갔고, 그 결과 사회 전체적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불평등이 커지면서 경제적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대다수 서민 중산층의 생활이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서민중산층 생활 피폐

이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친서민으로 말을 바꿔타고, 수출 위주에서 내수 시장을 적극 키우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타이밍이 늦었다.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이 정부의 말과 정책은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고 있다.

이제 다음 정부의 몫이다. 2013년 새 정부는 낙수경제가 아닌 분수경제를 말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중소기업 서민 중산층으로부터 경제 활력의 원천을 찾는 정부, 모든 이에게 도전과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반듯한 철학과 불굴의 역량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다. 내년 대선은 백마타고 오는 기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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