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길 부사장

아마 지금은 모두가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쌍용차 노동쟁의 때 일입니다.

물도 전기도 끊긴 까마득하게 보이는 크레인위에서 헛된 희망 품으며 주먹 쥐고 하늘을 찌르고 있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정말 측은하고 딱해 보였었습니다.

또 그 때와 똑같은 상황이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강행한 정리해고가 노동계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의제로 떠올라 있습니다.

국회에선 청문회가 열리고 사회 원로들은 시국선언을 하고 시민들은 버스와 열차와 트럭을 타고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습니다.

     '정리해고' 근로자 나락으로

“악화되어가는 노동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과 정당성을 결여한 대규모 해고에 대한 분노가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는 가운데 노사협상 끝에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복귀를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간 35m크레인 위에서 홀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노사협상타결과 별도로 “ 정리해고가 철회되기 전 까지 내려오지 않겠다.

”는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리해고가 무엇입니까. 10명밖에 탈수 없는 배에 10명이 더 타면 배는 가라 앉아 모두가 죽으니 10명은 배에서 내려 달라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어찌해야만 합니까. 떠나는 저 배를 타지 못하면 내 자식이 당장 학교를 그만 둬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그악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근로자들은 나락으로 내몰고 사측은 정리해고 다음날 수백억 원의 배당잔치를 벌이고 임원들 연봉도 올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배가 가라앉는다고 해도 누가 믿겠습니까. 자의에 의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면 사람들은 “그 사람 거기 그만 뒀어”라고 말을 합니다.

타의에 의해 직장을 그만 두게 되면 사람들은“그 사람 모가지가 나갔다.

”라는 표현을 합니다.

‘모가지’가 나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 아닙니까.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의 동의어 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그 집안은 줄초상 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작년 우리나라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759달러를 기록하며 3년 만에 다시 2만 달러대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런 통계수치가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살림이 과거보다 더 고단하고 팍팍 해지기 때문입니다.

GNI 뒤편의 다른 통계를 보면 국민이 체감하는 고통이 엄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체 국민 소득에서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노동소득분배율이 2009년 60.9%에서 작년엔 59.2%로 떨어졌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업에 돌아가는 몫인 영업잉여는 16.4%늘었으나 종업원들의 몫인 피용자 보수는 6.9% 늘어났습니다.

기업은 갈수록 부유해지고 근로자들은 점점 살아가기가 힘겨워지고 성장의 과실은 소수의 수출대기업에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근로자 해고 최소화해야

사정이 이러한데도 근로자에 대해서는 정리해고 등 제도의 정비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IMF 등의 요구 사항이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피치 못할 과제임을 이해 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말을 믿겠습니까. 직장인 대다수는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약자들을 돌보고 응원하는 것이 힘의 존재이유입니다.

기업은 경영사정이 어렵더라도 해고만은 최후수단으로 최소화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용접을 하고 페인트칠을 하고 엔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고 모든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들이야 말로 우리경제를 유지시켜주는 기본을 만들어 주는 분들입니다.

정리해고자들은 일터에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일터에서 형님 동생 하며 얼굴에 굵게 패인주름이 흉터가 될 때까지 일 손 놓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될 것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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