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성 군산대 교수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친구가 페이스 북을 통해  ‘아버지 날’에 아이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지냈다며 사진과 함께 사연을 알려왔다. 그 여느 때 보다 즐겁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친구의 소식을 보니 두달전 일이 생각났다. 5월8일 ‘어버이날’ 행사를 교회에서 열었는데 호주에서 온 선교사는 우리나라의 ‘어버이날’의 의미를 듣고 의아해했다. 원래는 ‘어머니 날’ 이였으나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할아버지·할머니까지 포함한 조상과 모든 어른을 위한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였다. 호주선교사는 왜 한국에서는 ‘아버지날’이 없는지 질문했다.
 
이런 이름의 기념일은 처음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00년대 초 버지니아 주에 살던 안나 자아비스 라는 여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에 어머니 무덤가에 피어있던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모임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 Mother's Day)로, 또 1909년 도드리라는 부인이 홀로 자신을 희생하며 5남매를 키운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아버지날을 만든 것을 계기로 1972년 닉슨대통령에 의해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 날(Father's Day)라고 지정했고 이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머니날’만 받아들여 의미를 발전시켰다.
 
사실 우리나라 아버지는 굳이 따로 ‘아버지날’이 필요 없을 만큼 유교주의적 가부장제에 의해 가장(家長)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존재자체가 집안의 권위였고 무너짐 없는 성이었다. 혹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아버지라도 가족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고 집을 떠나 몇 년씩 부재한 아버지 역시 ‘없어도 있는 존재 ’로 여기며 가족들은 순종해 왔다. 그만큼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침범하지 못하는 권위를 가진 존재였던 것이다.
 
     IMF 이후 달라진 아버지 위치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회는 급속도로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여성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특성이 대접받는 사회로 변화하자 양성평등의 논리가 사회 지배적인 담론으로 형성되기 시작했고 특히 IMF를 겪으면서 정리해고와 실직으로 인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기능적 아버지 역할조차 설자리를 잃자 아버지의 위치는 심하게 흔들렸고 아버지들은 이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서서히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사회 여론은 아버지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을 벌였다. 그러나 맞벌이가 일반화된 가정에서 부부간 역할이 모호해진 이시대의 아버지는 이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할 경우 프로주부 못지않은 주부역할을 해야만 한다. 꼭 선택만은 아니다.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아버지를 위해 머리 땋는 강좌를 실시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아버지들은 아내 대신 아이들을 돌봐야하고 틈틈이 요리도 해야 한다.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는 기러기아빠를 감수해야하며, 아내를 위해서는 한 끼 이상은 밖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환영받는 시대가 됐다. 철저히 도구화된 존재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는 왜?'라는 최근 화제가 된 동시가 있다. 아빠는 왜?-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 동시는 집안에서 냉장고나 강아지보다 못한 아버지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 웃음과 함께 많은 아버지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 아버지란 무엇인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가족의 기원’에서 밝혔듯 가족은 능동적이다. 사회와 경제적 토대에 의해 규정되고 변화된다. 그러나 당분간 이시대의 아버지들은 편히 설 땅을 쉽게 찾을 것 같지 않다. 어머니 삶이 고단했던 시절 ‘어머니날’을 만들었던 것처럼 ‘아버지날’ 이라도 만들어야 할 시대이다. 이 시대 아버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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