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김춘원 전주향교 사무국장
휴먼스토리/김춘원 전주향교 사무국장
  • 김근태
  • 승인 2011.07.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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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교동에 위치한 전주향교(사적 제379호)는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의 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타 최근 내방하는 관광객이 급증했다.

전주향교는 전국에 남아있는 234개 향교 중 앞쪽에 제례를 위한 대성전(大成殿)이 위치하고, 뒤쪽에 교육을 위한 명륜당(明倫堂)이 자리하는 전묘후학(前廟後學) 배치를 지닌 3곳 중 하나이자, 제주향교와 함께 계성사(啓聖祠)를 두고 5성(五聖, 공자·안자·증자·맹자·자사)의 부모의 위패까지 모시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노(老)선비이자 훈장으로 공맹(孔孟)의 윤리와 도덕,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 따라 후학을 양성하며 전주향교의 제반업무를 담당하는 김춘원 사무국장(80)을 만났다.

김 사무국장이 꺼낸 첫 번째 화두는 향교에 대한 것도 그 자신의 이야기도 아닌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이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으며, 어른과 스승을 공경할 줄 알고, 친구간에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가르침은 사회전반에 걸쳐 ‘기본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고루하지만 꼭 한번은 다시 새겨들어야만 할 내용. 김 사무국장은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이처럼 옛 성현들이 가르침도 짤막하게나마 전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유교적 전통을 지닌 전북 부안의 보편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김 사무국장은 유학의 윤리와 도덕 등, 기본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특히 어린 시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안향교를 방문한 후 그 고즈넉함과 웅장함에 매료된 후 일 평생을 향교에 관심을 갖고, 개인적으로는 옛 선비들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노력해왔다.

옛 선비처럼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된 김 사무국장은 부안향교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을 뒤로한 채 전주로 이사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가 이사한 집은 전주향교의 대문격인 만화루(萬化樓)에서 불과 50여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 김 사무국장은 이 곳 전주에서의 지난 50여 년을 이웃한 전주향교와 벗삼아 지내왔다.

김 사무국장은 60세에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후 지난 20년 동안을 전주향교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향교가 옛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될 수 있도록 돌보고, 제례를 준비하고, 전통을 배우기 위해 찾는 아이들에게는 훈장이 돼 한자교육과 기본윤리, 인성 등을 교육했다. 옛 선비들이 젊은 시절 조정에 출사해 국가의 녹을 먹고 일하다 노년에 낙향한 후 훈장이 돼 후학을 양성한 것처럼 김 사무국장도 국가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 후 향교에서 옛 전통을 가르치고 있으니 ‘옛 선비의 모습을 닮아가겠다’는 그의 노력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

그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전주향교에 대해 소개로 이어진다.

“전주향교는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지금의 경기전 북쪽에 세워졌어요. 그 후 경기전에 태조의 어진이 모셔지자 왕의 어진이 계신 곳인데 시끄럽다 해서 태종 10년(1410년)에 지금의 신흥학교 주변으로 이전했다가 선조 16년(1603년)에 현재위치로 재 이전했어요.”

이후 김 사무국장은 오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현재의 고등학교의 역할을 했다는 명륜당의 이야기, 동무(東)와 서무(西)에 나뉘어 모셔졌다는 우리나라의 18현과 송조6현, 공문10절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그는 특히 향교 곳곳에 자리잡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400년 가까이 된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은행나무는 공자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실 때 그늘을 제공했어요. 또 열매와 잎은 약재로 유용하게 쓰이고, 벌레먹지 않고 썩지 않는 귀한 나무죠.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명륜당에서 수학하던 미래의 관리들에게 ‘절대 부패하지 말라’는 뜻으로 교육기관인 향교마다 이러한 은행나무를 심었어요.”

김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전주향교는 지난 1983년부터 공맹(孔孟)의 윤리와 도덕, 정신을 계승하고 한문학습과 예절을 가르쳐 청소년을 선도하고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전국의 향교로서는 최초로 ‘일요학교’를 개설하는 등 6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에도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단다.

끝으로 김 사무국장은 현재 유림(儒林)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를 토로했다.

“현재, 향교를 돌보며 유림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공무원이나 교직에서 퇴직하신 분들입니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회적 변화와 직장문제, 그 밖의 개인적인 문제, 유학의 이념을 그저 전통으로만 치부하고 마는 경향 때문에 참여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지금 활동하는 사람들 중 가장 어린 나이대가 60대 후반이니 언젠가는 유림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향교 또한 시나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관광지로만 남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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