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일찌감치 물러간 전북지역은 요즘 매일같이 한 낮 기온이 33도를 육박하는 등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는 요즘 같은 더위에는 부채바람에 의지하거나 선풍기 앞에 앉아 시원한 얼음을 넣은 수박화채와 티스푼으로 곱게 휘저은 후 얼음을 동동 띄운 미숫가루 한 잔이 생각나기 마련.

이처럼 생각만 해도 시원한 얼음을 이용해 올해로 벌써 17년째 봄여름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에도 이웃들의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 조각해온 전북지역의 유일한 얼음조각가 빙산얼음조각 장택수 대표(45)를 만났다.

‘아이스-카빙(Ice-carving)’ 즉, 얼음조각은 예전에는 TV 드라마에 나오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연회에서나 간혹 볼 수 있었던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일반인의 연회나 모임, 행사 등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편.

특히 우리나라의 겨울철 대표적인 지역축제 중 하나인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 눈꽃축제는 전국의 얼음조각가들이 모여 얼음과 꽁꽁 언 눈을 이용한 초대형의 얼음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장택수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세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고 이때 찾아간 선배의 소개로 어느 레스토랑에 취업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이 곳에서 그릇 닦는 일을 시작으로 일류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된다. 젊은 시절의 8년간의 경험은 장 대표를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일류 레스토랑과 특급 호텔에서 요리를 배우고 일하게 하는 등 쓸만한 요리사나 주방장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장 대표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그가 호텔에서 요리하던 28세 때 연회에 쓸 요리를 준비하며 얼음조각 작품을 자주 보게 되면서부터이다.

“당시 대부분의 일류 호텔에는 연회를 장식할 얼음을 조각하는 기술자들을 두고 있었어요. 그분들이 조각하는 것을 보면서 막연히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깨 너머로 조금씩 배우기도 하다 보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길로 그는 8년간의 요리사 생활을 과감히 그만두고 서울의 한 얼음조각 전문업체에 찾아가 얼음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얼음조각에 필요한 어느 정도의 기술과 노하우를 익힌 장 대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서울보다는 수요는 그다지 많이 않지만 경쟁이 덜한 전북지역에서 하기로 결정하고 고향인 익산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그는 지난 17년을 전북지역에서 일하며, 지역의 모든 모임과 연회, 회갑연 등에 사용하는 얼음을 조각하며 함께 기쁨을 나눠왔다.

그의 지난 17년의 세월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전북지역의 유일한 얼음조각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독점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타 지역에 비해 수요가 적은 터라 하루 평균 주문량이 1~2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빙산얼음조각의 직원은 장 대표뿐이다. 간간히 그의 아내가 도와주기는 하지만 얼음조각이 전문적인 기술과 예술미를 요하는 일이기에 아내의 도움은 떨어진 얼음조각들을 청소하거나 기타 자잘한 정도에 그칠 수 밖에 없고, 얼음을 사다 냉동창고에 넣는 일, 얼음을 조각하는 일, 직접 연회장에 배달하는 일 등을 혼자 도맡아 하고 있다.

“운영이 어려워 포기할까도 생각한적이 많았죠. 가정은 꾸려야겠는데 일감은 없고 그래서 낮에는 얼음을 조각하고, 밤에는 젊었을 때 경험을 살려 레스토랑 주방장으로도 일해보고, 얼마 전까지는 한 농약업체에서 트럭 배달 일도 했었어요. 얼음조각을 전북에서 저 혼자 하는데도 돈이 안 되는걸 알았는지 이 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설령 오더라도 인건비 때문에 쉽게 가르칠 수도 없는 형편이죠.”

하지만 장 대표는 위의 한탄에 이어 자신이 얼음조각을 포기하지 못한 특별한 매력에 대해 소개한다.

“순간예술인 얼음조각은 결국 녹아버리고 만다는 일회성이 가장 매력이죠. 그 얼음이 녹아가는 과정에서 작품이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도요. 가령 호랑이를 조각해놓으면 이게 서서히 녹으면서 사람들은 그 안에서 늑대의 형상도 발견하게 되고, 더 녹으면 개나 고양이로 보기도 해요. 독수리는 매가 되고 비둘기가 되고 참새도 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또 4~5년 전 동계올림픽 실사단 방문에 맞춰 평창의 얼음축제에서 만들었다는 실물 크기의 남대문 얼음조각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다. 너무도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버린 얼음에는 도구가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애를 먹고, 몇 날 몇 일을 잠도 못 자가며 고생했지만 얼음조각가로 일하며 가장 보람 있었다며 회상한다.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의 정 가운데 서있는 장 대표는 요즘 얼음조각을 그만 둘 시기를 생각하고 있다. 조각하는 얼음의 무게가 하나에 100~150㎏이나 되는 까닭에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면 이 일을 더는 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대표는 요즘 꿈이 하나 생겼다.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갤러리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 하긴 지난 17년 동안 전북지역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얼음조각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정작 남아있는 작품은 단 하나도 없고, 괜찮은 작품을 찍어둔 몇 장의 사진뿐이니 좀 서운할 만도 하다.

도내 유일의 얼음조각가 장택수. 그는 스스로 직업병이라는 감기를 사계절 내내 달고 산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작품을 위해 처내는 얼음 조각만큼의 땀방울을 흘리며 영하의 얼음저장고와 30도가 웃도는 작업실을 오가고 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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