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성군산대 교수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아마 지성이 아닐까 한다. 이 지성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최상의 선물이며, 창세 이후 인간은 이런 지성을 무기로 여타의 피조물들 위에 군림하고, 그것들을 이용하며 삶을 영위해 왔다. 말을 타고 이동했으며,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고, 비둘기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였다. 그러나 이 지성은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동물 이상의 도구들을 고안했다. 그 도구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발전한다. 그 결과 우리는 말 대신 자동차를 타고 소 대신 트랙터로 경작한다. 그런 기계의 발명은 편리함을 가져왔고 우리의 삶은 더 없이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인간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런 멍텅구리 기계보다는 말귀를 알아듣는 똑똑한 기계를 원했다.

         컴퓨터 역사는 인공지능 역사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36년 이런 기계를 종이 위에 설계했다. 그 당시는 튜링의 기계(Turing Machine)를 구현할 기술이 부족했다. 종이 위에 수학적 기호로 그려진 그 기계는 그로부터 머지않아 실제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컴퓨터이다. 이후 컴퓨터는 인류문명을 크게 업그레이드시켰지만 튜링의 계획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컴퓨터는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멍텅구리이기 때문이다. 튜링 이후 많은 천재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지만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 그 동안의 기술개발 덕분에 인공지능은 현재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나마 활용되고 있다.

컴퓨터의 역사는 곧 인공지능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이 컴퓨터를 발명한 궁극적 목적이며, 이것이 실현되지 않고는 정보혁명이 완수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이 우리 앞에 밀려왔지만 아직 그 종착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스마트한 컴퓨터의 개념은 튜링 이전 문학에서 먼저 등장한다. 1921년 체코 프라하에서 한편의 연극이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로봇(체코말로 일꾼)이라는 인조인간이 등장하는데 이 로봇이 자기를 만든 인간에게 반역하여 인간을 말살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지성의 창조는 신의 고유영역이다. 이 연극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므로 인간은 종말에 이르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로봇이란 용어의 탄생이 이런 비극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런 비극을 향해 끝없이 질주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튜링이 꿈꾸던 인공지능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차펙이나 아이작아시모프의 작품처럼 픽션이 아니라 현실로. 인간의 대뇌에는 약 300억 개의 세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8년경이면 반도체 칩 하나에 들어있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뇌세포를 능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면 대뇌의 계산능력을 능가하는 컴퓨터가 우리 앞에 올 날이 그리 머지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지성시대 이별-사랑있어

기계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시기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한다. 특이점시대에는 인간의 지성을 능가하는 초지성(superintelligence)이 우리를 대신하여 많은 일들을 처리할 것이다. 초지성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인간은 매트릭스에 갇혀 사는 슬픈 존재로 전락할 것인가? 초지성은 인간의 도움 없이 새로운 초지성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초지성은 지진이나 쓰나미를 예측하고 미지의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행복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 때도 인간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이별을 슬퍼하고,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할 것이라고. 그의 말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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