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김년임 전주음식명인 1호
휴먼스토리/김년임 전주음식명인 1호
  • 김근태
  • 승인 2011.09.15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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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맛의 고장 전주를 대표하는 여덟 가지 맛(全州八味)을 꼽자면 8월에 나는 감인 파라시와 녹두로 만든 황포묵, 열무, 애호박, 모래무지, 무, 콩나물, 미나리를 들곤 한다.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 전주비빔밥은 전주와 인근에서 나는 이 여덟 가지 맛을 한번에 가장 많이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전주비빔밥이 스포츠로 치자면 음식종목의 국가대표라면, 전주비빔밥 종목의 첫 번째 국가대표선수이자 이미 명예의전당에 입성한 공로자는 지난 1990년 ‘전라북도 향토음식 지정업소 전주비빔밥 1-1호’로 지정된 가족회관의 창업주 김년임 대표(74)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풀이 돋는다’는 좌우명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 대표는 가장 좋은 재료만을 사용해 차리는 풍성한 밥상과 이윤과 원가보다는 밥상 위의 행복을 고집하는 음식에 대한 철학, 비빔밥과 한식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공로로 지난 2006년 전주음식명인 1호로 지정됐다.

이어 2008년에는 전라북도 지방무형문화제 전주비빔밥 기능보유자로, 지난해에는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최고 식품명인으로 각각 지정되기에 이른다.

김 대표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어머니’라는 위대한 이름의 스승과 맛과 음식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 스스로 끊임없이 이어온 맛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 완주군 초포면(현재 전주시 전미동 지역)에서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손맛이 인근에 자자했던 어머니의 정성 어린 음식과 함께 성장했다.

“우리 어머니는 음식을 아주 맛깔나고 정성스레 잘하셨어요. 내가 어릴 적에 도지사님이 우리동네를 방문했다가 소문을 듣고 집에 직접 찾아와 식사를 하고 가실 정도였어요. 그 후로도 인근 지역을 방문할 일이 있으시면 일부러 우리 집에 찾아와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가셨고, 귀빈이 오시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도 어머니께 음식이나 반찬을 부탁하시기도 했죠.” 김 대표의 어머니는 집에서 김치를 담거나 간장, 고추장 등의 각종 장을 만들 때, 술을 빚거나 특별한 음식을 만들 때면 모든 자녀들을 둘러 앉히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단정한 옷 매무새를 강조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재료 다루는 법과 수많은 반찬 만드는 방법, 맛을 내는 비법 등을 하나 둘씩 전수했단다.

김 대표는 또 음식점 상호를 ‘가족회관’으로 짓게 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회상한다.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그 집 음식 맛은 알아도 목소리는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어요. 한번은 언니와 싸워 야단을 맞게 됐는데,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지 않고 빨랫줄을 괴는 긴 막대기를 가져와 언니와 나 사이에 놓고 넘어지지 않도록 얼굴을 맞대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시간이 지나 힘이 들고 아파 어머니께 용서를 구해봐도 용서해 주시질 않았죠. 그러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던 두 자매가 까르르 하는 웃음을 터뜨리면 그때야 그만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께서는 벌을 주시면서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이 같은 올곧은 가정교육 속에 성장한 김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또 한 명의 어머니이자 스승인 장형욱 여사가 설립한 전주여자고등기술학교에 진학해 요리와 양재, 편물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음식은 집에서 만드는 것으로 족하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음식이 아닌 다른 길만을 걸어오던 김 대표가 비빔밥과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전주시내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할 때 그의 손맛을 인정하던 단골손님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음악감상실에는 단골손님들이 많았었는데 언제부턴가 끼니를 거르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두고 우리만 밥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물 두어 가지로 소찬을 준비했어요.” 숨겨진 김 대표의 손맛을 발견한 단골손님들은 일부러 밥을 거르고 음악감상실에 찾을 정도로 매료됐으며, 이러한 열혈손님들의 권유로 김 대표는 지난 1979년 현재 자리인 전주우체국 사거리에서 전주비빔밥 전문점 ‘가족회관’을 시작했다.

그 때부터 김 대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일 이른 새벽부터 가장 좋은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고, 좋은 사골을 골라 밥을 지을 육수를 내고, 2~30여 가지에 달하는 고명을 직접 정성스레 준비해왔다.

영업시간 이후에는 밤늦게까지 맛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새벽이 찾아와 시장에 나가야 하는 시간까지 몰두한 적도 부지기수. 김 대표는 지난 1997년 장녀인 양미(47) 씨에게 대표자리를 물려준 후에도 매일같이 손수 음식을 장만하며 전주비빔밥의 전통의 맛과 세계화라는 목표를 함께 전수하고 있다.

또 전주비빔밥 홍보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직접 우리의 맛을 알리고, 전주비빔밥을 개량 발전시키기 위해 비빔밥 연합회와 영농조합 설립하는 등 비빔밥지킴이로서 살아왔다.

뜨겁고 흰 쌀밥 위에 따뜻하고 차가운 갖가지 고명이 얹어있는 전주비빔밥.김 대표는 오늘도 고운 밥 위에 붉은색(당근, 고추장, 쇠고기)과 푸른색(호박, 시금치), 노란색(황포묵, 콩나물, 은행), 흰색(도라지, 더덕, 무), 검은색(표고버섯, 고사리, 다시마) 등 사시사철 때에 맞춘 갖가지 재료들로 한데 어우러져 잘 짜인 유기그릇에 담아낸다.

“전주 음식보다 더 좋고 맛있는 음식은 없습니다. 그게 저의 자부심입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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