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는 20일 낮에 노송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인근 차량 밑에 둔 성금을 가져가도록 했다. 그가 이번에 맡긴 성금은 5천24만2천100원이라고 한다. 5만원권 100장 묶음 10개와 돼지저금통에 든 동전을 합한 것이다.

전주 노송동에는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이 ‘얼굴 없는 천사’가 다녀갔다. 이제는 연말마다 기다리는 미담이 됐다. 그가 올해까지 12년간 맡긴 성금은 2억4천744만6천120원이라고 한다. 해마다 끊임없이 참여하면서 쌓아 온 정성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성금을 기탁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낯도 내지 않고 있다. 그저 조용히 때가 되면 동사무소 근처에 성금을 놓고 직원이 찾아가도록 전화를 한다. 소박한 편지만이 그의 뜻을 전한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십시오. 힘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짤막한 편지가 전부다.

‘얼굴 없는 천사’ 가 맡긴 성금은 노송동 관내 소년소녀가장과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쓰여질 예정이다. 천사의 숭고한 뜻까지 전해지면서 소년소녀가장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노송동 주민센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 성금을 지정 기탁했다. 

전주시는 그가 성금을 놓고 가는 곳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전북창작극회는 오는 25일까지 그를 소재로 한 연극 ‘노송동 엔젤’을 공연하는 등 '얼굴 없는 천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한 해가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분위기는 썰렁하다. 몇해 전만 해도 세밑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런 미덕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모두가 어려운 경기를 탓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빛나는 게 나눔이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