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토리/이동호 내과원장
휴먼 스토리/이동호 내과원장
  • 김근태
  • 승인 2012.02.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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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경원동에 위치한 이동호 내과의원은 병원 지하에 전주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태극권 수련장이 마련된 이색적인 병원이다. 요가와 함께 질병예방 및 신체건강을 위한 대체의학으로 손꼽히는 태극원 수련장이 이 곳에 마련된 이유는 이동호 원장(75)이 국민생활체육 전국우슈연합회와 사)대한태극원협회를 창립한 국내 유일의 우슈와 태극권 공인9단의 무술 고수이기 때문.

이 원장은 내과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가정의학과와 심장내과, 결핵과, 소화기내시경 전문의, 방사성동위원소 특수취급의 등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전북도립전주병원장과 전북도립의료원장을 역임하는 등 본업인 의학 및 의료분야에도 두드러진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그에게 의사의 직함은 생계를 위한 부업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공식직함만 해도 전국우슈연합회장, 대한태극권협회 이사장, 대한태극권학회장, 대한태극권연맹 총재, 전라북도인재육성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인상학원 이사장, 전북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 한국예총전라북도연합회 자문위원,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 등 수십 가지에 달한다.

이 원장의 활동 분야는 의학과 교육, 사회, 문화, 종교, 철학 등 ‘사람 그리고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닿아있어 도무지 한 사람의 성과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 이 원장의 삶은 그의 모든 생에 던져진 유(儒)·불(佛)·선(仙) 등의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깨달음, 무술 고수라는 독특한 이력 덕에 흡사 한편의 무협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지난 1938년, 전남 보성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이 원장은 5~6세의 어린 나이부터 ‘남을 위한 삶을 살자’고 스스로 결정한다. 이러한 결정은 그를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참혹한 민초들의 삶과 병들거나 다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전남대 의대에 진학한 20대의 그에게 평범한 의사의 길을 갈 수 없도록 만든 하나의 화두가 던져진다. 바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이 원장이 답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접하게 된 서양철학은 해답을 주지 않고 또 다른 질문만을 던졌다.
서양철학과 성서 등을 탐독하며 답을 구하다 전남대 의대 본과 1학년이 된 이원장은 그의 가장 큰 스승인 현공 윤주일 화상을 만나게 된다.

“제 현공 화상을 만나 14년 동안 가르침을 구했죠. 스승님을 만난 후 화두가 풀리고, 불가에 귀의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상이 그랬듯 부모님께서는 5남매 중 장남인 제게 기대를 하시고 교육도 제게 집중하셨죠.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부모님의 간절한 기대에 인연을 차마 끊지 못했죠.”

이 원장의 철학적 성찰은 이후 불가를 넘어 도가와 유가 등 동양철학 전반으로 확대된다. 유불선의 큰 스승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이 중엔 이 원장을 우슈와 태극권을 연마하게 만든 30년 스승, 노장철학의 울의도인도 있다. 또 자기성찰도 멈추지 않았다. 홀로 있는 시간이면 이 원장은 명상을 한다거나 선인들이 남긴 서적을 통해 가르침을 구했다. 이 원장의 이러한 자기성찰 노력은 병원 2층 서고에 보관된 10만 여권의 동양철학 서적들로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자’는 어릴 적 다짐은 이 원장을 ‘나 보다는 우리, 가족보다는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바쁜 삶을 살아오도록 만들었다.

“지난 1967년 예수병원에 내과의도 없던 시절, 전북도립의료원장인 저는 내과 전공의와 수련의를 배출하고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매주 일요일이면 각 병원장들의 협조를 얻어 함께 무의촌 봉사를 나갔죠. 무의촌 봉사도 여의치 않을 때는 홀로 가방에 약과 주사, 링거 등을 가득 채우고 약장수처럼 이곳 저곳을 떠돌며 환자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는 또 표현문학회 고문과 전통문화연구소 활동 등을 하며 명맥이 끊긴 ‘천년전주 용왕제’와 ‘천년전주 성황제’, ‘기령당 기로연’ 등을 복원해 계승하도록 힘써왔으며, 판소리 등 민속악으로 치우친 전주가 온전한 국악의 고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시조와 가곡, 가사 등의 정악 발굴에도 힘써왔다.

또 전라북도생활체육회를 이끌어 오며 생활체육대축전과 전국어르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전북인재육성재단 이사장으로서 지역발전을 위한 인재육성에 힘써왔다.

“전북생활체육회는 지역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전북방문의 해’인 올해는 우리나라 국민과 전 세계교표 생활체육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민족 세계생활체육대축전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서울과 전주에 장학숙과 고시원을 운영하고, 연간 650여명의 도민 자녀 해외연수를 지원해온 인재육성재단은 올해부터 장학사업을 확대해 해외연수인원을 1천명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일평생 단 한번의 휴가도 보내본 적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러한 많은 일들은 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삶이 힘에 겹거나 하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일평생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에 대해 성찰해왔습니다. 어느 날 불연 듯 깨닫게 된 답은 ‘無(무). 我空(아공)’ 즉, ‘나는 없다.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아 마음이 비어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마음속의 갈등이 없으니 스파크가 나지 않고 과열도 되지 않았습니다. ‘비우며 얻는 에너지’, 그것이 내가 많은 일들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끝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정의했다.

“옛 백제의 풍요로움이 사라진 전북도민은 지금 ‘잘 살아야겠다’는 한을 품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지역이 10년 안에 잘사는 곳, 즉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고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유함 속에 도민들은 여느 곳보다 발달된 전통문화를 향유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삶을 살아 갈 테죠. 현재는 실의에 빠져 있지만 ‘희망’을 가지면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제게 많은 직함이 주어졌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전북의 미래를 알리는 전도사’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편집=류경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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