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놀이에 꼬리말 잇기가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것은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은 것은 백두산.’ 베란다에 피어있는 괭이밥(일명 싱건지) 꽃을 보고 나는 불현듯 꼬리말 잇기가 생각이 났다.

 꽃은 사람을 기쁘게 해, 기쁜 마음은 사람을 불러, 사람이 모이면 웃음이 넘쳐, 웃음이 넘치면 우리 모두 행복해, 행복하면 세상이 밝아, 밝으면 서로 통해, 통하면 우리 모두 사랑해, 사랑하면 하나가 돼… .   우리 집 화분 중에는 다육식물이 세 개가 있다.

두 개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여 화분 대열에 끼워 놓았지만 하나는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가 농원을 하는 친구한테서 얻어온 것인데 하도 알량해서 한쪽 귀퉁이에 관심 밖으로 밀쳐놓았다.

다른 화분에 물을 주다가 어쩌다 생각나면 선심이나 쓰듯 물 한 모금 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늦은 봄 어느 날 무심코 베란다에 나갔다가 귀퉁이에 눈길이 갔다.

이게 웬 일. 다육식물은 가운데 조그맣게 못난 그대로 있는데 괭이밥이 넝쿨지어 노란 꽃이 오밀조밀 많이도 피어 있는 게 아닌가. 잡풀에 불과한 괭이밥이 이토록 감동을 주다니. 아마도 흙에 씨앗이 묻어와 있던 것이 나름의 오랜 시간 사투를 거쳐 꽃을 피우게 된 것이리라. 고양이가 소화불량에 걸리면 뜯어먹는 약초라 하여 이름 지어진 괭이밥은 어린 시절 손톱에 봉숭아 꽃물 들일 때 봉숭아 꽃잎과 같이 꽁꽁 찧어 손톱위에 올리고 콩잎으로 정성껏 싸서 실로 챙챙 감았던 기억이 있다.

다육식물을 얻어온 것이 한 2년쯤은 지난 것 같은데 꽃이 피다니.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화분에 꽃이 핀 것을 빌미삼아 사람들을 불러들일 궁리를 했다.

 나는 손님초대를 할 때 성의껏 준비하되 격식은 그리 따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큰 부담 없이 즐겁게 한다.

번거롭게 상을 차리지 않고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흰 종이를 깔아 야외에서 먹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상만 안 펴도 여러 사람일 때는 수월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기분나빠하지 않고 재미있어라 한다.

 때마침 전날 사돈어른을 초대한 뒤끝이라서 식재료가 더러 남아 있기도 하고 귀하게 핀 꽃을 혼자보기가 아까웠다.

맛있는 것이나 좋은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작용했음이다.

예전엔 괜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해 와글와글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몸이 그리 실하지 못하다보니 요즈음은 뜸하게 되었다.

 잠깐, 누구를 초대할까 생각하다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문학동아리 회원들을 부르기로 했다.

이른바 번개라는 것을 나도 한번 쳐본 것이다.

어허, 갑자기 연락을 했는데도 두어 시간 만에 회원 몇 사람 빼고 20여명이나 와 주었다.

 꽃은 사람의 감성을 기분 좋게 건드린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꽃처럼 웃을 때 다른 사람을 같이 웃게 만든다.

잡풀에 불과한 괭이밥이 꽃을 피워 나를 기쁘게 했다.

이른바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준 셈이다.

눈물이 전염되듯, 웃음이 전염되듯 화가 나면 별일이 아닌 것도 괜히 짜증이 나 주변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게 되고, 기분이 좋으면 조금 껄끄러운 일이 있어도 너그러운 마음이 된다.

일종의 연쇄반응이라고나 할까. 이렇듯 내가 어떤 감정에 이입되었느냐에 따라 색깔이 다른 감정이 전달된다.

 환하게 핀 괭이밥 덕분에 모처럼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었다.

괭이밥은 역시 기쁨이라는 꽃말답게 그의 구실을 톡톡히 한 것이다.

/ 이  정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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