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에 이런 말이 있다 한다. ‘사람은 어리석은 말을 할 권리도 갖는다.’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느 변호사가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고, 이를 권위 있는 시사 주간지가 보도하였으니(<시사인>231호 61쪽) 빈말은 아닐 것이다. 참신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 헌법에도 이런 구절이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미국 헌법을 인용한 것을 보니 우리나라 헌법에는 아마도 이런 구절이 없는 것이 아닐까?

헌법(憲法)이 무엇인가? 국가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기초에 관한 근본법규가 아닌가. 비록 헌법 개념이 역사적 발전과정과 사회적 접근방법에 따라 다르게 분석, 정의되는 다의적 개념으로 변천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일의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럴지라도 일반적으로 본다면 헌법이란 기본권 보장을 규정한 근본법이며 최고의 수권법이다.

기본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유와 권리, 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다. 그 중에서도 외형적 요소에 관한 규정과 함께 인간의 내면적인 측면에까지 그 기본권을 규정한다.

일례로 정치적 인권과 함께 사상의 자유, 생각하는 자유, 말하는 자유를 중시함으로써 누구도, 무슨 이유로도 이 천부의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이 지닌 근본정신이다. 이에 따라 통치자의 구미에 맞는 말,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말, 시류에 영합하는 말, 표현이 매우 멋진 말, 수사적으로 아름다운 말을 할 권리야 규정하지 않아도 누구나 선호하고 선의로 본다. 이런 말들이야 굳이 헌법이 보장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소통되며 가치와 생명력을 지닌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말을 할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느냐에 헌법정신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통치자의 구미에 맞지 않는 말, 권력자의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는 말, 욕설을 할 권리,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 농담을 지껄일 수 있는 권리까지를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천부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이 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말은 인간이 천부적으로 지닌 권리와 자유로운 표현수단이자, 이 말할 권리를 침해당하고서는 어떤 자유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다/ 우리 둘째 손녀딸이다/ 첫 생일을 코앞에 두고 있어/ 말을 배우느라 못하는 말이 없다/ 뒤뚱거리며 말길 걷느라/ 듣지 못하는 소릿길도 없으리라/ 말 잘하는 언니가 하는 말/ 귀를 쫑긋 세상에 세우는 안테나/ 별빛으로 수신하느라 반짝이는 눈동자/ 그러고는 저를 말한다./ 아다다다 어루루루 지다다다/ 그러고는 입보다 손짓도 말한다./ 그 생각 너머의 구름도 불러오고/ 구름이 짜놓은 그물에 담을 물결도/ 그려 넣으리라/ 틀 지워지지 않은 처음/ 생각의 물길/ 누가 있어 댐을 놓을 수 있으리/ 없다, 아무 데도, 누구도 없다/ 없어야 한다./ 하늘 길에 빨간 신호등 켜두지 않은/ 새들 저 무한 비상처럼/ 지심 깊이 허무를 내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두 살에서 세 살을 건너가는/ 우리 둘째 손녀딸 이다처럼/ 모든 물길은 말길이 곧 살길/ 이다.>-이동희「헌법」전문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신비하다. 말 한 마디를 익히려면 최소 만 번은 같은 말에 노출되어야 비로소 입에 익을 수 있다 한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소통의 수단으로써 말을 익히는 것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여길 정도다. 그러므로 이제 말을 배우는 아이는 물론이고, 말로써 헌법의 근본정신을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루인 법관에게도 말할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어리석은 말을 할 권리도 보장하는 나라가 있다는데, 통치자의 비위에 거슬린 말을 좀 했대서 현직 법관을 배척하는 나라는 헌법정신의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말을 한다는 것은 쟁취해야 할 자유이기 이전에 천부의 권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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