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26일 프랑스 브르제(Bourges) 군비행장에 한 대의 비행기가 착륙했다.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의전(儀典)을 위해 프랑스 대학교육담당 국무상이 비행기에 올랐고 주인공은 프랑스 국립의장대 사열(査閱)에 들어갔다.

 공화국인 이집트 정부에서 발급한 외교관 여권에 왕(王)으로 표시 되어 있던 그의 방문 목적은 치료였다. 당시 나이가 무려 3천3백세에 가까웠던 주인공은 람세스 2세(Ramses II)다. 미라(mirra) 피부에 문제가 생겨 그것을 치유하고자 프랑스를 방문한 것이다.

한때, 술 취한 이집트 관리에게 과세(課稅)대상인 건어물(乾魚物)로 분류되는 모욕도 당했지만 프랑스는 위대한 파라오(Pharaoh)에 대해 국가원수로서의 예우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모세(Moses)와 대결을 벌인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하는 그는 기원전 1286년 카데쉬(Kadesh) 전투에 직접 출정한다.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Hittite)의 무와탈리 2세(Muwatalli II)와 맞서야 했던 이집트는 당시 청동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집트는 거짓정보에 속아 주력 군단이 괴멸 당할 정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람세스 2세의 무용(武勇)에 의해 전세를 만회할 수 있었다. 후세 사가(史家)들은 만일 이 전투에서 이집트가 패했다면 성경의 내용도 바뀌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서로가 승리를 주장했지만 양쪽 모두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하고 장기전에 들어간다. 결국 양측은 기원전 1269년 전쟁의 종결에 합의하게 되는데, 이것이 세계사에 기록된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평가되는 ‘카데쉬 조약’이다.

 현재까지의 고고학(考古學)적인 증거로만 보면 당시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상의 많은 지역이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죽은 지 3천년이 훨씬 넘은 람세스에 대한 프랑스의 의전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람세스 이후에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영웅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영웅은 등장하고 숭배되고 있다. 생각해볼 것은, 지금 숭배되고 있는 대상의 생명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3천년 후에도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불 꺼진 암흑 속에서 밝게 빛나는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가지게 되는 의문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북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김정일이 죽으면 후계자 김정은의 입지가 불안할 것이라는 전망도 마찬가지다.

 예측이 맞지 않았다고 해서 분석의 틀이 잘못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북한이 정상적인 이론의 범주에서 제외된 예외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는 그런 북한을 부러워해 닮고자 했지만 결과는 비극으로 끝났다. 루마니아는 결코 북한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부정하겠지만, 김일성은 레닌이나 모택동(毛澤東) 보다는 이성계(李成桂)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승계는 북한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밤 세워 불이 밝혀져 있어야 할 도서관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암흑 속에서 홀로 빛나는 조명의 주인공은 김일성 초상화다. 내가 궁금한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라가 3천년 후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인가이다. 3천년 후 존재할 지구인이 람세스 2세에게 보여준 의전을 그들의 미라에게도 보여준다면 우리는 영웅을 몰라본 바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완주군농업기술센터 장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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