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도 나의 좌충우돌 귀촌기로 시작하려 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따라 2년 전 완주로 왔다. 귀촌 후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운전면허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 살 때만해도 운전면허증은 선택사항이지 필수사항이 아니었다.

내려온 후 잠시 거주했던 고산 자연휴양림은 고산면 소재지에서 3km 거리에 불과한데도 버스가 하루에 2차례밖에 안 다녔다. 같은 행정구역내에 거주하는데도 임시 사무실이었던 고산면사무소까지 출퇴근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미안한 부탁을 해야 했고 때로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5,000원 넘는 택시비를 지불해야 했다. 집을 송광사 근처 소양으로 옮기고 나서는 더 놀라웠다. 같은 완주에서 완주를 가는데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것. 그래서 전주로 나가 소양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한 번은 시간대를 못 맞춰 나갔는데 그 시간대에 소양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없었다. 그리 급한 일이 없어 한 시간에 한 대는 있으려니 하고 퇴근했던 나는 6시에 출발해 밤 8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기보다 더한 농촌살이의 서러움을 몸소 체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곧바로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버스파업 시골교통약자 힘들어

농촌에서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건 꿈같은 일이다. 버스 시간대와 버스노선에 내 일상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인지 마을 어르신들은 버스 시간대를 몸으로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버스를 놓치면 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기에 일찌감치 정류장에 나와 이야기판을 벌인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환승해야 하는 일이 많고, 환승시간도 길다. 소양면 소재지에서 송광사로 들어가는 버스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한번은 소양면 소재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은 상자 한 가득 물건을 사 오시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근처 가게에서 가지고 온 노끈으로 상자를 얼기설기 두르기 시작했다. 기다리며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그런 할아버지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버스를 탈 때까지도 그 노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내리시는데, 그 노끈은 가방 끈처럼 변해 커다란 상자는 순식간에 등에 착 달라붙었다. 아마도 내려서 또 한참을 걸어 들어가셔야 하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의 삶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어르신들의 고된 일상에 씁쓸했다.

나는 지금 작은 승용차를 굴리고 다닌다. 우리 집은 남편의 차량까지 승용차 두 대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농촌의 현실로 웬만한 집들은 차가 2대 이상이다. 심지어 가족 수대로 차를 굴리는 집들도 있다. 휘발유 값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차를 버릴 수가 없다. 시간에 맞추어 이동해야 하고, 정해진 노선 이외의 장소로 움직여야 하니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이상 도저히 차를 포기할 수가 없다. 농촌에 와서 집값이니 부식비니 다 줄여도 꼬박꼬박 들어가는 유류비는 줄일 수가 없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수도 없고 다른 동네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수도 없고 완주군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들으러 갈 수도 없다. 이런 것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누리고 싶은 문화생활은 참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면 큰일이다. 시골로 내려오시라고 부모님을 설득하는 나는 “늙어서 아프면 어떻게 하냐?”는 말에 답할 말이 없다. 인구가 점점 줄고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농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모두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말이지 농촌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행정기관도 문제인식 가져야

지금 전주지역과 인근 농촌의 교통약자들은 시내버스 파업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파업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질 않는다.

교통약자의 발인 버스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더욱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다. 한 때 완주군이 내 놓은 ‘마을택시운영’ 공약처럼(지금은 여러 검토 후 마을버스로 전환되었지만) 지역 스스로의 자구책도 필요하다. 올해 완주군 예비커뮤니티비즈니스(CB)사업단 중에 회원들을 모아 함께 차를 공유하는 ‘카쉐어링’에 도전하는 사업단이 출발 예정에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소박한 꿈을 꾸어본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