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사롭다.

4월 중순이 다 되도록 새벽 최저기온이 영하권에 머물더니 하루 이틀 사이에 낮 최고 기온이 15~6°C에 이른다.

봄으로 껑충 뛰어 넘어오는 느낌이다.

하긴 계절이 언제고 사람의 뜻 따라 변화되었던가?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꽃소식이다.

벚나무며 개나리꽃, 진달래며 산수유 꽃나무 가까이 다가가 꽃망울을 자세히 들여다볼라치면 무슨 할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앙다문 입술들이 야무지기만 하다.

그런 입들이 할 말 다하지 않고, 안 할 말 끝내 하지 않겠다는 듯이 숨죽이고 있다가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는 격이다.

저들에게 독립의지의 자유를 전해준 화신(花信)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을 것도 없이 계절의 순환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이 산 저 산 진달래 만발하고, 이 거리 저 거리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공원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잘 가꾸어진 건물의 화단마다, 혹은 조붓한 주택가 울타리마다, 또는 옹색한 베란다 포트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봄을 속삭이는 꽃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화사하다.

온화한 봄기운이 대지에 가득하고, 향기로운 꽃내음이 가는 곳마다 넘친다.

이맘때면 꽃가게가 한산할 것 같다.

도처마다 넘쳐나는 꽃을 누가 어찌 가둬두고 싶겠는가? 그러나 있다.

따로 챙겨두고 보아야 할 꽃이 있다.

눈을 뜨고 보면 천지가 꽃이지만, 눈을 감고 보면 또한 천지가 꽃인 마음밭도 있다.

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꽃이지만, 눈을 감아야 보이는 꽃도 있다.

꽃놀이는 눈을 뜨고 보는 꽃잔치지만, 마음밭 나들이는 눈을 감고 보는 꽃잔치다.

세상이 모두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는 꽃들은 시장에 백화점에 대형마켓에 차고 넘친다.

눈에 보이는 꽃들은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다.

돈이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돈이 없어도 허접한 권력 부스러기만 지녀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꽃들은 시장에서 백화점에서 대형마켓에서 살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구할 수 없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꽃들은 눈을 감아야 비로소 만날 수 있고, 구할 수 있으며, 내가 될 수 있다.

  <눈을 감고 보면 보인다/ 햇살이 그러는 게 아니다/ 바람이 그러는 게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봄이었음을/ 네 짓이었음을,/ 손잡고 나들이하는 어여쁜 심술이었음을// 천 년이 세운 돌탑이 노란 금잔디 위에 자빠지더니/ 천연덕스럽게 파란 이야기로 돋아나질 않나// 새하얀 눈사람으로, 눈사람의 안사람으로/ 기다란 벤치에 보료를 깔고 눕던 쓸쓸이/ 기다림 끝자락에 졸음마저 오질 않나// 나뭇가지 안테나마다 웃음조차 잃은 줄 알았더니/ 가는 곳 몰라 흘려보내던 샘물/ 찬 물 솟아나던 화덕마저 다시 노랠 부르지 않나// 삼박자 정형률로 저리 짝을 찾는구나// 분주한 춤사위로 날아가/ 메마른 가지마다 인사하는 입맞춤에/ 연둣빛 음표들이 저리 소리샘이 되는구나// 미움 풀어낸 바람이 그러는 게 아니다/ 구름 벗어난 햇살이 그러는 게 아니다/ 감은 눈 뜨고 보면 안다>-이동희「봄볕」)」전문   자연에서 보면 나쁜 심술은 없다.

심술의 바탕은 모두 곱고 어여쁘다.

꽃무리를 휘젓는 꽃샘바람의 심술은 밉지 않다.

안방에서 맴도는 우울을 불러내는 손길은 따사로운 햇살의 짓궂은 장난이다.

천년 유적이 늙은 그림자를 뻗치고 있는 잔디에 이야기를 돋아나게 하는 마음은 따뜻한 조크다.

찬샘[冷井] 약수터에서 솟아나는 해맑은 청정수는 대지의 유머다.

메마른 가지에 봉긋이 솟아나는 새순 젖꼭지는 새들의 입맞춤이다.

미움을 풀어낸 바람이, 먹구름 벗어난 햇살이 미치는 자리마다 고운 자연의 심술이 흔연하다.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보인다.

‘봄’마저 눈을 감지 않고서는 진정 볼 수 없고 살 수 없어 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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