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경험을 중시하는 자들이 노상 쓰는 어투다.

경험주의는 인식의 바탕을 경험에서 찾는 철학적 경향을 말한다.

경험론에서는 선험적이며 이성적인 계기에 의한 인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손수 터득한 체험만을 진실로 여겨 보수적이고 과거 지향적인 경향성을 띠는 것도 경험론이 지닌 특징의 하나다.

그러나 인식의 토대를 튼실하게 하려면 노련한 경험적 지식과 신선한 창의적 상상력이 결합되어야 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젊은이들이 직장생활이나 뭔가 도전적인 과업을 추진하면서 부딪치는 난감함도 여기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잦을 것이다.

주어진 과제를 참신하게 꾸려보려는 의도는 으레 결재권자나 돈주머니의 끈을 움켜쥐고 있는 자들의 ‘경험론’에서 좌절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생물이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이며 수동적 ․ 감각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세계를 실험하여 나가는 능동적 ․ 행위적인 것이라는 <실험적 경험론-J.듀이>은 미국 사회와 교육계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모든 철학적 논리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근본적 경험론-W.제임스>는 유물론과 종래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에 반대하면서 실용적 경험론의 토대를 확립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한 사회는 물론 열린 지식세계를 향해 던지는 철학적 패러다임의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뭔가 참신한 아이템을 계발하려는 실무자에게 “내가 해봐서 아는데…”식의 권위적인 간섭과 통제가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타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더구나 최고 결재권을 지닌 사람에게는 더욱 삼가야 할 덕목이다.

철권을 휘두르는 장제스[蔣介石]의 권유에도 관료의 길을 거절했던 후스[胡適]는 그래도 쟁우(諍友-잘못을 말해주는 친구)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군주의 지식과 능력은 한계가 있다.

전국의 이목을 자신의 이목으로 알고, 전국의 수족을 자신의 수족으로 알고 의지해야 한다.

대권을 장악한 사람이 자신에 넘치고 능력을 과신하면 국민들에게 재난을 안겨준다.

(김명호『중국인이야기』171쪽)”   <비는 내림이다/ 오늘에/ 어제도 내일도/ 들었듯이// 사람은 숨이다/ 삶에/ 날숨도 들숨도/ 들었듯이// 사람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이다// 사람을 내려/ 굳은 땅을 숨 쉬게 하는 비/ 몸의 주인처럼>-이동희「몸주」전문   비는 내림이다.

내리지 않는 비는 없다.

이미 내린 비도 내려서 비다.

그래서 ‘비가 내린다’는 동어반복이다.

이미 내린 비가 또 내린다니 그렇다.

사물을 흑과 백, 악과 선, 나와 너, 지배와 피지배, 주체와 객체로 구별하고 편을 가르려는 분별심이 저지르는 잘못이다.

자연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시간도 자연의 일부다.

“내가 해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따르니 진리다.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듯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비이듯, 비처럼 나는 그냥 자연이다.

국민은 사람의 집합이 아니다.

그냥 자연존재로서의 사람이다.

그 자연보다 우위에 서는 지도자의 경험이 어디 있겠는가!충언을 일삼았던 쟁우[胡適]의 죽음을 맞아 던진 철권 통치자[蔣介石]의 헌사가 눈부시다.

“신문화 가운데 구도덕의 모범이며, 낡은 윤리 가운데 신사상의 사표(新文化中舊道德的楷模,舊倫理中新思想的師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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