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데이트

한재갑뉴시스교육·학술 전문기자
올해 수능시험은 전국 1191개 시험장에서 60여 만명의 수험생이 시험을 치렀다. 수능시험이 있는 날은 직장인의 출근 시간이 조정되는 것은 물론 군과 경찰, 공무원과 시민사회단체가 동원된다.

듣기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소음이 통제되고 항공기 이착륙도 금지된다. 500명의 출제위원과 200명의 지원인력이 한 달이 넘게 외부와 단절된 채 수험생 못지않게 고생했다.

한해 수능을 치르기 위해 소요되는 예산도 330억 원이 들어간다. 모의 수능 실시비용 및 수능 관련 정책개발을 위한 인력과 예산,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1년에 한 번 있는 수능에 수험생은 물론 사회 모두가 ‘올인’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수능 관련 파장도 끊이지 않는다. 수능에 대한 관리가 잘못되면 교육부 장관이나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옷을 벗어야 한다.

평가원장은 수능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 ‘물수능’, ‘불수능’의 비아냥을 들으며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그간 수능문제 유출과 시험문제 오류 논란, 난이도 조절 실패 등으로 옷을 벗은 장관이 있는가 하면 평가원장의 사과도 다반사였다.

1992년에는 시험문제를 도난당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해 시험이 연기됐고, 결국 윤형섭 교육부 장관이 물러났다. 2004년에는 휴대전화를 통한 부정행위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져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고,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연일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그만큼 수능은 국가 차원의 문제이며, 교육·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수능을 포함해 중요한 평가업무 전반을 관장하고 있는 평가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일례로 문제은행식 출제의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수능은 매년 땜질식 출제와 평가, 관리를 반복하는 게 현실이다.

문제유출 등으로 사고가 터지면 현재로서는 적절한 대처나 응급처방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의 교육평가원(Educational Testing Services, ETS)은 세계 전반의 900여 개 지역, 180개국에서 매년 5000만 개에 이르는 검사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세계적인 평가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ETS는 TOEFL®과 TOEIC®, GRE®, NAEP 등과 같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는 평가를 개발한다. 또한, 교사 검증을 위한 검증 방법, 영어 교육, 초∙중등학교, 예비 중학교 교육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개발한다.

1947년 카네기재단에 의해 설립된 ETS는 5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3000명이 넘는 평가전문가가 계속 문제를 개발해 문제은행식으로 관리·활용하고 있다.

영국은 영국자격시험기준청(Office of Qualifications and Examinations Regulation, Ofqual)을 운영하고 있다. Ofqual은 유아 조기교육 및 초·중등 교육과정에 관한 국가수준 평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Ofqual은 학력 인증을 위한 학점변환체제인 ‘자격 및 학점 체제(Qualifications and Credit Framework: QCF)’에 맞춰, 교육과정 이수 자격과 연계된 평가수행 민간기관에 대한 인증, 감독 및 규제도 함께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민간 평가기관에서 시행하는 대학입학 자격 관련 평가(예: GCSEs A / AS Level Diploma 등)의 비교·분석을 통해 객관성 및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16차례나 입시제도가 크게 바뀌었다.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입시제도를 변경하려는 논의가 있다. 그러나 국가단위 입시관리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평가주관 기관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수능폐지, 수능 자격고사화, 5지 선다형 수능의 교육적 폐해 등에 대한 개선책도 찾을 수 있다. 평가는 교육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할 만큼 교육활동의 핵심이다.

국가대사(國家大事)인 수능을 계기로 학생만 평가할 게 아니라 평가기관을 평가해 평가기관이 반듯하게 자리 잡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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