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팀장
여기는 전북 완주.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피난을 가야할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어디를 가든 안전하기는 할까? 최근 연이은 국내 원전관련 보도를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실제 영광의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상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주 완주에서는 제4회 커뮤니티비즈니스 한일포럼이 열렸다. 2008년부터 지역, 농촌의 재생과 자립을 위한 다양한 고민들을 이어왔다.

올해는 그 4번째 행사로 “지속가능한 농촌, 에너지 자립은 가능하다”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농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석유 의존률이 높다. 농사를 석유로 짓는다고 말할 정도로 각종 농자재 및 농기계, 시설재배의 경우 비닐하우스 냉, 난방시설 등 석유가 없이는 농업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매년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에너지 총조사에 따르면 농촌의 석유의존 비중이 85%정도로 석유의존도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세특례제도로 면세유를 공급해 석유를 싼값으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를 삼을 뿐, 면세유를 부여잡고 버티는 것이 지금 농민들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가 아닌 무엇으로, 어떻게 농촌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정말 막막하고 갑갑한 노릇이다.

  이번 포럼에서 그 실마리를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결론은 지금의 정부의 정책과 정반대이다. 대형화력, 원자력발전 위주의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공급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로컬에너지’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 방식도 위에서 아래로의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완주는 축산농가가 많기 때문에 축분뇨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해양투기가 금지되면서 골치꺼리가 된 축분뇨를 재활용한다면 특별한 비용없이 원재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이것도 외부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플랜트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소형으로 만들어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바이오 가스의 효용성을 알게 되고 그 기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일본 오가와마치에서 온 구와바라씨는 주민들과 소형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만들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축분, 돈분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상황에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반대에 부딪혀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외부자본과 기술자에게만 의존하는 방식은 지역에너지 생산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하고 있다.

덧붙여 “지역 에너지 생산도 지역의 이익으로 지역의 일자리로 돌아 올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강조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다들 한 목소리로 강조한 것이 ‘교육’과 ‘사람’이다.

‘교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에너지 소비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고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집에 차, TV, 냉장고 2대 이상인 집들이 많다.

사무실에서도 개개인별로 컴퓨터를 두고 일하는 풍경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절약’이 ‘궁상’과 동급으로 이해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아무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한 들 우리가 쓰는 소비량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끄는 발전소’ 절약이 곧 에너지 생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람’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이런 일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일 그것이 시급하다.

우리 사무실은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어졌다. 그러나 건물을 지을 때 외관만큼 고려했어야 하는 단열의 문제는 큰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 건물은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시원하다.

이런 공공건물 리모델링이나 건축시 에너지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단열재나 단열방식을 컨설팅 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올 겨울은 최악의 에너지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너무 늦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상황이니 너무 늦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된다. 늦지 않았다.”는 괜한 낙관보다는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과 긴장감이 필요할 때다. 지금 있는 여기서부터 가능한 것부터 빨리 시작하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