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전북의제21 기획연재 / 4. 유기농 포도

▲ 1971년부터 유기농포도농사를 일궈온 한남용(한국유기농업협회 부회장)선생이 정읍 신태인 희망농원에서 유기농 포도농사에 한창이다.

1971년부터 유기농포도농사를 일궈온 한남용(한국유기농업협회 부회장)선생을 신태인 희망농원에서 만나뵈었다.

정읍으로 내려오던 해인 93년에 13가구였던 마을이 48가구로 늘어나고 포도를 키우는 33농가가 모두 유기재배품질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가 없는 곳이라니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이 마을은 한남용선생의 역할이 아주 컸으리라. 

-과수 분야 국내 유기재배 인증 1호라고 하는데요 왜 포도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5~60년대에 농촌 계몽 활동과 교육 사업을 했습니다. 야간학교와 유치원을 봉사로 운영을 하다 69년 과로가 누적되어 쓰러졌는데 7가지 합병증으로 1주일도 못살거라는 선고를 받았어요.

“미국의사협회에서 암환자들이 유기농포도로 완치됐다는 논문이 있다.”며 미국인 선교사인 의사의 권유로 포도요법을 시작했는데 온몸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거예요. 병원에서 자살하려고 농약을 먹었냐고 묻더군요. 포도에 잔류농약이 많아 농약중독증상이 온 겁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유기농포도가 없었거든요. 수소문 끝에 개화기 전에만 농약을 사용하는 포도를 구했는데 먹기 시작한지 15일 만에 붓기가 가라앉고 남산만한 복수도 없어지면서 기운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농약의 위험성을 알고 유기농포도의 회복력을 체험한 계기로 포도 재배를 시작하고 유기농업에 대해 연구했죠.

-건강을 회복하셨는데도 직접 재배를 시작하셨네요?  

▲ 처음으로 경험을 했고 살아난 장본인이기 때문에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어요. 현대의학으로 손 쓸 수 없는 사람들을 직접 살리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이천, 고성, 정읍, 진안 총 4개의 농장이 있는데 모두 희망농원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도 죽을 뻔 했던 아픔을 겪어봤기 때문이고 내가 가는 길이 바른길이라는 것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믿고 싶었어요.

-그 당시에 유기농은 개척에 가까웠을텐데 대를 이어서까지 하고 계시는 이유는요?  

▲ 자료, 기술, 정보가 없어 스스로 연구해야했던 것은 물론이고 군사정권 때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로 반공법위반으로 3번이나 잡혀갔습니다.

논밭농사보다 유기농 과수 재배는 지금도 어려운 일인데 처음 시작했으니 얼마나 더 어려웠겠어요? 아버님이 원예 쪽의 농업기술 전문가셨어요. 12남매 중 제일 허약해서 집에 혼자 남아 아버지 일을 도울 때가 많았어요. 그때는 그게 참 싫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최고의 배움의 시간이었죠. 제 아버님을 이어 제가 2대, 아들이 3대농부입니다.

저는 아들이 오히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활동을 했으면 했는데 아들이 먼저 원예농사의 가업을 잇겠노라고 결정해줬고 함께 하고 있으니 항상 고맙게 여기고 있죠.

 

-유기농업에 대한 가치관을 말씀해주세요.

▲ 농업은 가장 바른 직업입니다. 특히 유기농업은 생명지킴이죠. 밥상은 그 집안의 건강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의 요리사는 의사이자 약사입니다.

일반적으로 농약은 나쁜 것으로 인식하지만 화학비료도 그에 못지 않아요.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미네랄이 부족한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는데요. 사실 일반농산물에는 의료비가 추가로 더 든다고 보셔야해요. 유기농산물에는 미네랄 함량이 평균 300배 이상 높습니다.

그만큼 건강해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비교하면 유기농산물이 비싼 게 아니예요. 더 비싼 화장품, 가방 같은 물건을 사면서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20~30% 비싼 것이 엄청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저는 “먹거리의 선택이 건강 선택의 과학이다”라고 얘기합니다. 또 하나 음식을 먹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감각적 욕구를 즐기기 위한 행위를 하고 있어요. 배로 먹고 살던 때에서 눈으로 먹고 사는 시대, 머리로 먹는 시대, 코로 먹는 시대를 거쳐 몸으로 먹고사는 시대로 옮겨가야 합니다.

- 소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소비자들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불신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저농약 인증제도 때문인데요, 한 번의 실수로도 회생불가능 할 만큼 법이 엄격해졌기 때문에 무농약, 유기재배농민들은 99.9%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농약제도가 2015년 없어지지만, 소비자들도 유기농업에 대해 이해하시고 품질인증단계를 확실히 파악하시어 판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선의의 양심적 농민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길이기도 하지만 안정성을 갖춘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 스스로를 위한 길이기도 하죠. 건강을 보장해주는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의료비를 줄인다고 확신합니다.

제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 전 아토피가 심했던 며느리도 금새 좋아졌어요. 아들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될 뻔 했는데 의사들이 놀랄 정도로 뼈가 단단하고 강해서 회복이 되었는데 건강한 먹을거리를 덕분입니다.

소비자들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선택으로 모든 가정에서 약봉지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 앞으로 계획은요?  

▲ 유기농업과 영양분이 풍부하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으로 국민들의 건강이 회복되는 사회 만들기에 일조하고 싶고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활동을 바탕으로 유기농업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소비자와 농민 그리고 다음세대까지도 정심(正心)으로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싶어요.   혀 끝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살리기 위한 유기농이라 하셨다.

이리도 극적인 경험에 더 이상 말해 뭐할까.  정농(正農), 정식(正食), 정품(正品), 정인(正人)이 되기 위해 정심(正心)을 가장 첫 번째로 꼽으신 선생은 인생의 가치관으로 명품건강과 명품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서 계신 땅으로, 마을로, 선생의 몸 그대로.  

조미정(전북의제21추진협의회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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