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데이트

황석순 뉴시스 논설실장

박근혜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지방 사회간접자본(SOC)공약 대부분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27개 신규 SOC공약사업 중 10개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9개가 '경제성 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10개 중 9개나 타당성이 없다니 눈을 의심할 일이다. 아직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지 않은 17개 사업이 모두 타당성이 있다고 가정해도 최소 3개 중 하나는 경제성이 없는 셈이 된다.

이는 대선 당시 경제성 등은 감안하지 않고 표심을 얻기 위해 공약을 남발한 결과다. 정부는 통상적으로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다.

이때 해당 사업의 '편익-비용 비율(B/C ratio)'이 1을 넘어야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분류하고 그 이하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번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10개 공약 사업의 평균 B/C비율은 0.66에 불과했다. 10개 사업 중 총사업비 1조4000억원이 투입되는 전남 여수~경남 남해를 잇는 한려대교는 B/C비율이 불과 0.045~0.108에 지나지 않았다.

전북 부안과 고창을 잇는 부창대교는 0.54, 전남 광주와 완도를 잇는 고속도로는 0.66, 경북 포항~강원 삼척간 고속도로는 0.26~0.27, 춘천~속초 복선전철은 0.39~0.75로 역시 1에 못미쳤다.

또 106개 지방공약 이행 계획에 포함된 중부내륙선 철도 복선·고속화 사업도 총공사비는 3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2017년 기준 1일 승차 인원은 1만4605명에 그칠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로 비쳐볼 때 대부분의 지방공약 사업이 하루에 차 몇 십대 정도 오가는 연륙교나 농촌의 농기구나 다니는 도로, 출퇴근 시간대에도 텅텅 비는 경전철 등 말 그대로 표만을 위한 공약이 수두룩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공약사업을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떼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정부 일각에서는 민자유치를 해서라도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지자체는 아예 사업이행에 불리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원칙적으로 지키는 게 맞다.

하지만 옥석을 가리지 않고 공약이라고 경제성이 없는 것까지 무조건 이행하다보면 막대한 혈세를 들여 완공해 놓고도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양양, 청주 국제공항 등 수년간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채 무용지물이 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해당 공약이 취소될 경우 아쉽겠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접을 건 접어야 한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로 인해 타 지역 국민에게까지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지역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신규사업비 84조원을 포함해 모두 124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재정 상황은 그렇게 넉넉치 않다. 올 상반기 5개월간 10조원의 국세가 덜 걷히는 등 나라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다.

일부에서 민간자본 유치를 적극 추진해 지역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지금 같은 불황에서 어떤 민간사업자가 선뜻 나설지 의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공약 이행도 좋지만 경제성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접을 필요가 있다. 괜히 경제성도 없는 것을 가지고 약속을 지킨다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간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자자체들도 경제성 없는 사업을 억지로 떼를 써가며 추진할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확신이 설 때 대안을 내놓고 중앙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조사대상에서 빠진 17개 신규 공약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도 앞당겨 실시해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부터 실제 사업에 착수하기까지 최소 4~5년이 걸리는 걸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공약의 지역별 추진 일정과 방법 등도 앞당겨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정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게 된다.

공약사업 착수가 계속 늦어질 경우 다음 대선에 다시 재탕공약으로 등장하거나 불필요한 선거 쟁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정치권은 앞으로 있을 대선, 총선에서는 선심성 지역공약을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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