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하정우(35)가 재난 스릴러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의 주연을 맡았다고 했을 때, 영화계에는 기대만큼 우려도 있었다.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스타일의 영화이고, 검증이 덜 된 신인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며, 그것도 단독주연, 더군다나 1시간37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러닝타임을 홀로 끌어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하정우의 연기력을 신뢰하면서도 작품 선정 능력, 티켓 파워의 시험대로 여기며 흥미로워 하는 시각도 많았다.

개봉 시기가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맞상대가 ‘설국열차’라는 사실로 더욱 관심이 고조됐다. 봉준호(44) 감독도 모자라 크리스 에번스(32), 틸다 스윈턴(53), 송강호(46) 등 한·미 연합군에 대항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물론 ‘설국열차’에 대한 초기 반응에서 호불호가 갈리며 ‘혹시 하정우가 설국열차를 테러해 탈선시키는 것 아닐까’하는 말도 나왔다.

7월31일 두 영화가 함께 개봉하고 12일이 흐른 지금, 열차는 테러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폭주하고 있다. 누적관객 644만명 대 383만명. 그러나 ‘설국열차’의 450억원과 ‘더 테러 라이브’의 36억원이라는 순제작비의 현격한 차이를 떠나 감독에서 배우들까지 어느 하나도 유리한 구석이 없었다고 본다면, 졌다고 꼭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하정우 자신으로서는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이자 ‘감독·제작자·투자자가 믿고 맡길만한 배우’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보이며 ‘대세’에서 ‘유일대세’로 업그레이드됐다.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지만, 자칫 무모했을 수도 있는 도전을 하정우가 감행한 이유는 오히려 ‘더 테러 라이브’가 갖고 있는 수많은 핸디캡 때문이다.

“핸디캡이 많다는 것이 저를 강하게 이끌었어요. 한 장소에 한 인물이 등장해서 계속 끌고간다는 것인데 이를 극복한다면 오히려 굉장히 참신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죠. 역으로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감정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분산되지 않은 채 집중될 수도 있구요.”
 

일말의 부담은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쯤은 ‘도전해서 연마하자’는 각오에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았다.

“부담은 작품마다 느끼는 것이에요. 혼자서 하든지, 여럿이 하든지 상관없이 늘 주연배우로서 책임감과 부담감은 같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대’라는 시선 역시 “맞다. 그러나 내게 있어 매 작품이 시험무대”라는 생각으로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손익분기점인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현재 성적을 보며 ‘단독 주연에 나름 자신이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에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그 안에서 한 번 놀아보자 했던 것이지 ‘이 기회에 나 혼자 배우의 역량을 뽐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 것은 배우로서 유치한 생각이죠. 영화 안에서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에 잘 녹아드는 것이 옳지, 배우가 영화 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만큼 창피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하정우는 시나리오상 존재했지만 형상화 되지 않았던 ‘윤영화’를 우리가 좋아하고 존경하다 실체를 알게 된다면 바로 경원하게 될, ‘명품’으로 포장된 ‘속물’로 살려놓았다. 대사와 행동, 눈빛, 표정, 제스처에 헤어스타일까지 이용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처지들을 표현해내며 실제 상황 한 가운데 놓인 당사자로 세웠다.

하정우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경이로운 캐릭터 창조력에 대중은 경탄하고, 동시대 배우들은 질투하며, 감독·제작자는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유혹해야 할 지 고민에 빠져있다.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자신에게 인색하다.

“아직 80점밖에 안되네요. 저는 늘 80점짜리에요. 그래서 늘 ‘평균치 이상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하려하죠.”

“그렇다면 90점은 언제쯤?” 바로 답이 돌아온다. “한 40대 넘어서, 연륜과 경험 등이 뒷받침되면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불과 5년 뒤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정우는 이미 40대인 선배 배우들의 연기에 관해 “선배님들은 모두 100점이세요. 제가 감히 평가할 수 없죠”라는 말로 스스로에 대해 인색하다 못해 자기비하까지 시간을 앞질러 벌써부터 하고 있으니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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