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통사고가 나면 우스갯소리로 ‘블랙박스’가 있는지를 먼저 본다고 한다. 블랙박스의 영상을 보고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이다. 우리 소방차에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언제부턴가 블랙박스가 장착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고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방차에 달린 블랙박스의 용도는 좀 다르게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의무 위반을 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증거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소방차에 블랙박스를 장착해 위반차량을 단속하고 방송에서 계속적인 홍보를 해야 할 만큼 긴급자동차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부족한 걸까?

물론 시민의식의 부재도 한 가지 요인이 되겠지만 소방차 길 터주기(긴급차량에 대한 양보 의무)는 다각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에 필자는 효과적인 제도정착을 위해 3가지 방면으로 접근하려 한다.

첫째, 성숙한 시민의식의 함양 옛말에 가장 재밌는 구경 중에 하나가 불구경이라 했다. 실제 현장에 출동 해보면 피해 당사자들의 안타까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많은 구경꾼들로 사고현장은 분주하고 어수선하다.

그러함에도 정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면 짐짓 모르는 체 하는 경우가 많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데 뒤에서 출동하는 소방차는 그냥 차에 지나지 않다. 왜냐하면 내 집에 불이 난 것이 아니고 내 가족이 아파서 출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소방차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이미 많이 알고 있는 골든타임(Golden Time)은 심정지 환자를 5분 이내에 빠른 전문적 응급처치를 실시하여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화재현장에서는 인명, 재산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말하기에 우리소방에서는 현장 도착 5분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다한다.

결국 나와 내 가족의 소중한 목숨과 재산 보호=소방차 길 터주기라는 등호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등호가 성립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소방차에게 우선적으로 길을 비켜주는 성숙한 시민의식일 것이다.

둘째,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홍보의 필요 그러나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로 직결되는 소방차의 출동시간을 결코 시민의식의 부재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시민들에게 소방차 길 터주기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제법 나온다.

소방차가 뒤에서 오고 있어 본인은 피해주고 싶은데 정작 ‘어떻게’, ‘어디로’ 해야 할지 몰라서 주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들이 도로위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은 제 시간에 비켜주지 못하고 소방차의 갈 길을 막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한다.

그간 소방관서는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비켜줘야 할 시민들은 그 방법조차 모르고 있다. 혹 소방관서 혼자만 열심히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을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교통정책과의 결합 2013년 12월에 발생한 부산 화명동 아파트 화재로 4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5분내 도착’이라는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화재 현장을 바로 앞에 두고도 빼곡히 주차된 골목의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4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수많은 사고 현장에 출동을 하다보면 정작 현장을 목전에 두고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때문에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먼 길로 돌아서 접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1가구 2차량이 대부분인 요즘, 주차 공간 확보 등 구체적인 대책을 확보하지 않은 채 골목길에 주차하지 말라는 식의 문제해결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공영주차장을 확대하고, 지속적인 홍보와 계도로 한 방향 주차를 유도하여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확보하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현재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량 외 주차금지 구역이 지정되어 있고, 소방활동 시 필요한 소방용수 인근에 주정차가 금지된다. 이렇게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차 길 터주기” 성숙한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관(官)의 지속적인 정책, 그와 더불어 시민들 속으로 파고들어 갈 수 있는 색다른 홍보전략 구사, 마지막으로 적절한 교통정책이 뒷받침 해주어야 소중한 ‘골든타임’ ‘모세의 기적’은 이루어 질 수 있다.

달리지 못하는 소방차! 전적으로 시민의식 부재에서 비롯된 것인가? 라는 질문에 필자는 이렇게 답하고 마무리 하고자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 우리 시민들이 ‘해낼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세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한방향이 아닌 민·관 양방향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자”.

/남원소방서 식정119안전센터 소방장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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