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사내요, 내면은 여성이다. 혼자서 열 한 명을 쓰러뜨릴 정도의 강인함을 지녔지만, 오래 전부터 여성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영화 ‘하이힐’에서 배우 차승원(44)은 타고난 성과 내면의 성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차승원은 이 영화를 “견뎌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어느 수위까지 표현해야 관객이 인지할까 고민했다. 많은 분이 ‘지욱’의 마음을 느껴야 하지만, 과하면 이상해진다. 희화화된 인물처럼 과장되는 건 철저하게 배제했다. 다행히 장진 감독이 내 얼굴 뒤에 있는 다른 얼굴을 발견한 것 같다. 부풀리지 않아도 여성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표현해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차승원표 여장은 성공적이었다. 영화 초반 차승원의 어색한 화장에 즐거워했던 관객의 반응은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연민으로 바뀌었다. 굵은 팔뚝에 초콜릿 복근을 지닌 그의 여장에 ‘예쁘다’는 감탄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차승원도 “사람들에게 비친 연기의 색깔이나 색감이 공감을 산 것 같다. 캐릭터의 힘을 믿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여장 연기도 진심으로 마주했다. “모델을 오래 해서 그런지 하이힐을 신고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여성 모델들을 보며 메모리가 됐었나 보다. 그때 본 모습대로 따라했던 것 같다. 여장도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나름 괜찮았다. 썩 예쁘진 않았어도 넘어갔다. 눈썹도 다 밀며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전혀 해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 “내 안에는 남성적인 모습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남성의 여성성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태초에 사람에게 양성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중 어떤 사람은 여성, 어떤 사람은 남성의 성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과 맞지 않을 경우 충돌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이해했다.

이 영화로 첫 액션에도 도전했다. 차승원은 “정말 힘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습을 많이 해도 현장에서 새롭게 합을 맞춰야 하는 인물이 있다. 또 인간이므로 합이 안 맞을 때도 있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부상이 생긴다. 테이블 위해서 싸우는 장면도 그랬다. 물이 흐르고 하니 미끈했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바닥이 아니어서 위험했다. 촬영하다 무릎이 돌아가고 팔목도 삐었다. 어깨도 찢어졌다. 전치 8주? 체감 부상은 1년이었다.”

장진(43) 감독과 친분을 쌓은 지 어느덧 20년이다.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2005) ‘아들’(2007)에서도 감독과 배우로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이번 작품 제의가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노(No)’였다. “감독님이 성소수자에 대한 큰 비중을 말하지 않았다. 또 지욱이라는 인물이 결혼하고 아기도 있는 인물이었다. 이해가 안 됐다. 결혼한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장 감독은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다시 차승원에게 건넸다. 그때야 ‘오케이(OK)’를 얻어냈다. 하지만 차승원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액션은 스태프들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디자인은 무술감독이 하고 연습은 내가 할 테니 현장에서 훈수를 두지 말라고 했다. 대신 데모 테이프가 나오면 그때 감정선을 조절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친한 사람 앞에서 연기하는 게 불편하다. 내 무기를 알고 있으니까. 이번 현장에서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제껏 장진 감독과의 작업과는 달랐다. 우리가 이 영화의 결과물을 두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함께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익숙했던 행동을 답습하지 말자고 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하이힐’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차승원의 얼굴을 끄집어냈다. “익숙함이 나이가 들면서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 영화는 돈과 두 시간의 시간을 내서 찾아야만 하는 문화다. 좋든 싫든 간에 관객은 투자해서 이곳을 찾는다. 그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하면 욕이 나온다. 영화를 찍는 입장에서 굉장히 조심스럽다. 다음 영화를 찍더라도 보편적인 것은 안 할 것 같다. 이제껏 봐왔던 차승원의 얼굴이 아닌 새로운 얼굴로 기대를 증폭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다.

진지한 대답 속에서 ‘흥’이 배어났다. 하지만 '하이힐'에서만큼은 코미디를 양보했다. “희극을 너무 좋아하고 희극을 사랑한다. 희극이 안 되는 배우는 배우로 인정할 수 없다. 일류 배우 중 희극이 안 되는 배우가 없다. 다행히 이번 영화에서는 오정세라는 훌륭한 배우가 코미디를 채워줬다. 나는 엘리베이터 신에서 웃겼으면 만족한다.”

차승원은 SBS TV ‘너희들은 포위됐다’ 촬영으로 쪽잠을 자면서도 에너지를 뿜어냈다. “드라마 촬영으로 예능을 못하는 게 아쉽다”며 너스레까지 떨면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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