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뉴시스 논설고문

친구 = 문창극 씨가 총리후보직 사퇴 기자회견하면서 자진사퇴한다고 말했는데, 이거 강제사퇴 아니야? 오도된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난 거잖아?

나 = 사퇴는 내가 결정했다는 걸 알리려는 것 아닌가? 누가 사퇴하라고 해서 사퇴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만 두고 싶어서 그만 두는 거다 이런 마음을 밝히고 싶어서 자진사퇴한다고 한 것 같은데?

친구 =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하겠다 이런 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자진사퇴를 한 게 아니라 자진사퇴를 당한 것이군. 그런데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도 되나? 총리로 지명했으면 청문회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엉터리 보도가 만들어낸 엉터리 여론을 앞세워 청문회를 열 필요도 없다고 나선 사람들, 생각이 제대로 박힌 건지 모르겠어. 그런 억지 때문에 세월호다 경기부진이다 해서 안 그래도 지쳐있는 국민들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 알기나 하는지 몰라.

나 = 청문회를 반대한 사람들, 처음엔 여론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말을 바꿨어. 문 씨 때문에 이미 국론은 분열됐으며, 그렇게 국론을 갈라놓은 사람은 청문회를 통과한다 해도 국무총리로서의 기능을 못 할 거라고 주장했잖아. 하지만 국론 분열은 문 씨 책임이 아니지. 편파적 보도를 근거로 형성된 왜곡된 여론을 무기로 문 씨를 공격한 사람들 책임이지. 피해자인 문 씨에게 가해자라며 책임을 묻다니 파렴치하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어. 그런데, 청문회를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친구 = 국회의원들이 질문하면서 호통만 치는 청문회라면 보나마나겠지. 그게 아니고 제대로 답변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면 볼만은 했을 거야. 정치인들과 40년 기자 경력을 대부분 정치부에서 보낸 언론인이 맞붙는 건데 여태 봐온 청문회와는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어?

나 = 정치부 기자를 오래했다는 게 문 씨가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로부터 공격받는 이유일 것 같지 않아? 기자하면서 정치인들을 얼마나 많이 비판했겠어? 당한 사람들은 이때구나 하면서 구원을 갚으려 하지 않았겠어? 보수적인 시각으로 쓴 글이 많은 편이니 야권의 원한이 더 깊겠지만 말이야.

친구 = 새정치연합의 한 거물 의원은 DJ 밑에서 청와대에 있을 때 문 씨에게 엄청나게 당했다는 말이 있더군. 신문사로 찾아가 기사 좀 잘 써달라고 사정했는데 면박만 당했다는 소문도 있어. 여당에도 문 기자에게 원한 있는 사람들 꽤 있을 거야.

나 = 여당 사람들은 과거사보다는 미래 때문에 문 씨를 반대했다는 분석도 있지. 문 씨가 총리가 돼서 일을 잘하면 다음 대권주자로 유력해질 것 아니냐. 그러니 미리 싹을 잘라놓자 이런 말도 나왔다는 거야. 그리고 기자 출신이니 관료나 법관은 물론 정치인 출신 총리보다 다루기가 더 어려우리라고 예상했다는 거지. 누구에게나 쉽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게 기자들 속성인데 그런 사람이 총리가 되면 골치만 아프게 된다는 거겠지.

친구 = 대통령도 이번 일 겪으면서 문 씨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닌가? 진짜 책임총리가 되겠다고 나서면 골치 아플 거니까 자진사퇴 시킨 거 아닌가?

나 =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대통령은 이번에 잘못 판단했어. 자진사퇴를 시키는 건 아니었어. 청문회는 열도록 했어야지. 그게 자신이 강조해온 원칙과 정도를 지키고, 여태 잃은 점수를 그나마 회복하는 길이었을 텐데, 질질 끌다가 아주 엉뚱한 판단을 내렸어. 실망이야.

나 = KBS는 어떻게 되려나. 그 보도 때문에 일제와 싸우다 전사한 독립투사 조부를 둔 문 씨가 친일파로 몰렸으니 책임을 져야하지 않나?

친구 = 책임도 책임이지만 그 따위 보도가 나오게 된 경위를 밝혀냈으면 좋겠어. 정말 그 경위가 너무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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