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불꽃 삶' 끝나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불꽃 삶' 끝나지 않았다
  • 김일현
  • 승인 2015.01.0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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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말 김대중 정권교체 DJ경제 브레인 역할 톡톡 IMF닥쳐 대미라인 풀가동 경제위기 극복 주도 역할 햇볕정책 주도 대북 관계개선 DJ-신앙 70년대 삶의 큰 자리 1995년 지방선거 도지사 선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생사 자체가 생로병사 그리고 그 삶을 이어가는 길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도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지만, 그런 교차의 굴곡이 훨씬 깊은 인생사도 있다.

경제학자에서 정치 신데렐라, 전북지사, 대권 경선 후보, 대주그룹 회장,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그리고 그 화려한 이면에 구속 여파. 유종근 전 도지사는 전북에서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가진 인물이다.

보통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지만 누가 뭐라 해도 유종근은 우리 시대 전북의 한 역사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의 불꽃 삶을 시작한다.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 기자, 오랜만이네. 우리 서울 식구들은 다 잘 있는가?”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유종근 전 지사임을 금방 알 수 있게 했다.

“연말에 내가 한국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을 맡았네. 서울 기자들 한 번 봐야지.” 내년 국회의원 총선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겸사겸사 전화하셨나? 그러나 선거와는 관계가 없었다.

“경제, 사회라는 내 원래 필드로 돌아왔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생각이에요.”전화를 끊자 유 전 지사와 처음으로 공식 인터뷰했던 1997년 연말이, 스쳐 지났다.

대선에서 DJ가 승리한 뒤 유 전 지사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블루계열의 ‘하늘색 와이셔츠’를 즐겨 입었다.

흰색 와이셔츠에 둘러싸인 DJ 옆에서 그는 언제나 ‘파랗게’ 돋보였다.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고 자신감이 넘쳐났다.

[경제 위기 극복, 화려했던 10년]

1997년 12월19일. 김대중 대통령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라고 모두 들떠 있었다.

국민회의의 여의도 중앙당사와 경기도 일산의 DJ 자택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을 연호했다.

그러나 그 환호를 함께 할 수 없는 이가 있었다.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였다.

그는 DJ의 경제 브레인이었고 또한 DJ의 미국 핵심 라인이었다.

DJ 지지자들은 모두 정권교체 기쁨을 누리고 있었지만, 유종근은 경제를 챙겨야 했다.

국고는 텅텅 비었고 외환 위기는 한국 사회 전반을 암흑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유종근은 자신의 대미 라인을 풀가동했다.

DJ 정부 경제 관료들과 함께 IMF 극복을 주도해 나갔다.

유종근은 세계적 팝스타 마이클 잭슨, 투자계의 거물 조지 소르스 등과 접촉했고 이들과 DJ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마이클 잭슨은 헬기를 타고 새만금을 방문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이 전주 비빔밥에 완전히 반해 호텔에서 비빔밥을 시켜 먹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유종근은 국가 위기인 IMF 체제 극복을 위해 세계적인 명사들을 한국에 초청하고 투자를 청했다.

유종근의 노력으로 IMF 위기는 서서히 극복됐다.

그 스스로는 IMF 체제 극복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나중에 말 한 바 있다.

IMF 극복과 함께 유종근의 또 하나의 혁혁한 공로는 바로 대북 관계 개선었이다.

햇볕정책은 사실상 그가 네이밍한 것이다.

DJ는 평소에 이솝 우화를 많이 인용했다.

유종근도 그 영향을 받았고, 따뜻한 햇볕을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종근은 미국 측에 DJ가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관계를 개선할 것임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대미 라인을 풀가동해 햇볕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나갔다.

 

 


연말에 한국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마지막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생각이라고 말한 유종근 전 지사.
[DJ와 유종근의 ‘하나님’]

 

유 전 지사의 70년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DJ와 종교 신앙심.유종근은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가 됐고 이후 20년간 럿거스대 교수, 뉴저지 주지사 경제고문으로 일했다.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심장인 미국에서 그는 ‘경제’를 배웠고 일생을 경제에 바칠 생각을 했다.

실제 유종근은 익산 남성고에 다닐 때 경제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고려대 경제학과로 진학하고 미국에서도 경제 쪽에 올인 했던 이유다.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유종근은 4형제인데 모두가 경제와 연관을 맺고 있다.

형인 유종수는 캐나다 알고마 대학 경제학 교수로 은퇴했다.

동생인 유종성은 경제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냈다.

막내 유종일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케임브리지대 등에서 교수를 했다.

당연히 유종근도 경제학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했을 만 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DJ를 만나게 된 유종근은 진로를 바꾼다.

“DJ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대단한 분이었다.

위대한 지도자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 DJ를 만나면서 유종근은 국가 경영에 대한 DJ의 원대한 이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1987년 김대중 대선 후보 정책특보를 맡았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유종근은 정치 신데렐라의 이미지를 깨고, 자신의 힘으로 도지사에 선출됐다.

유종근의 인생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는 바로 신앙이다.

도지사와 대통령 경제고문으로 권력의 최정상부까지 올랐지만,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이른바 고관집 절도사건으로 그는 깔끔한 이미지에 상처가 났다.

또 세풍 사건으로 인해 3년여 옥고를 치렀다.

그에게는 최대의 시련기였지만 모든 것을 신앙으로 이겨냈다.

유종근은 출소와 특별사면 이후, 전주의 한 교회에서 이렇게 간증했다.

“가장 좋은 때에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또 가장 좋은 때에 이렇게 내보내 주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 그는 수감생활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용서와 감사의 마음을 배웠다.

그의 늦둥이 아들 주영(12)은 이미 주의 길에 들어서기로 하나님께 서원했다.

주영은 영문원서와 수학을 줄줄 꿰는 ‘천재’ 소년으로 불린다.

주영은 “주님께 영광을” 이란 의미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부인 김윤아씨는 동 대학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회자로서, 선교에 전념하고 있다.

가족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사는 모범적 신앙가정이다.

[시대를 앞서간 혜안]

유종근은 시대를 앞서나간 혜안과 통찰력이 있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그는 경선전에 참여해 CEO 대통령, 대권-당권 분리, 완전 국민경선제 등 파격적 공약을 던졌다.

이들 내용은 2015년 현재, 여야 정당의 기본 선거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내달 8일 치러지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대권-당권 분리다.

유종근은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국가 경영, CEO 대통령을 주창했다.

‘CEO 경제대통령’은 당시로선 생소했지만 이후 대선 후보들의 단골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아이러니지만 CEO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이 수혜를 입었다.

노무현과 유종근의 관계도 유종근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일화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하지 말라’고 한 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정치 이상을 실현하는 게 쉽지 않음을,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고 나서 알았다는 의미다.

정치에 대한 환상이 깨졌고 어쩌면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노무현과 유종근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다.

그러나 유종근은 ‘외부적 환경’에 의해 후보 경선에서 사퇴했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은 경선에서 국민통합론을 들고 나왔다.

노무현은 광주의 노풍을 발판으로 대선 후보가 됐다.

노무현은 후보 경선에서 유종근의 신국가론에 영향을 받았음을 여러 번 밝혔다.

노무현은 당시 “신뢰와 협동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제대로 구축하느냐 못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생산성은 생산요소의 투입에 있는 게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유종근의 신국가론이야말로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얘기”라고 강조했다.

노무현이 외친 사회적 신뢰 구축을 통한 국민통합은, 유종근의 신국가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유종근은 ‘신뢰와 사회적 자본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신국가론을 저술했다.

유종근의 대선 꿈은 노무현이 이어받았지만, 노무현이 실제로 국민통합을 이뤄냈는가에 대해선 혹평이 적지 않다.

특히 호남 지역에선 역소외 문제로 인해, 친노에 대한 신뢰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인사가 여전히 많다.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다.

[유종근의 갈 길]

제2롯데월드 건설 추진 등 왕성한 경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그는 올해 93세다.

유종근 이사장은 71세다.

연령은 우리 시대에서 이미 어떠한 장애나 장벽이 아니다.

능력과 추진력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해 낼 수 있다.

도지사 재임 시절, 김제공항과 새만금에 대해 무한애정을 가졌던 그는 이제 나라와 사회, 경제 발전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기로 했다.

(사)한국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이사장으로서 자신의 행정, 경제 경륜을 사회에 공헌키로 한 것.전북이 낳은 불세출의 경제학자이자 행정가인 유종근. 그의 불꽃 같은 삶이 이제 다시 한번 시작된다.

 

 


<걸어온 길>

 

▲유종근 1944. 정읍, 남성고, 고려대 경제학과 1973. 뉴욕주립대학교 경제학박사 1973~1994. 뉴저지 럿거스대 교수 1979~1990. 뉴저지 주지사 수석 경제자문관 1985~1993. 재미 한국인권문제연구소장 1991. 민주당 홍보위원장1994. 아시아태평양민주지도자회의 집행위원장 1995~2002. 전북 도지사(29대, 30대) 1997. 12. 국가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 1998~2000. 김대중 대통령 경제고문 2008~2010. 대주그룹 회장 [저서 및 역서] ·미국에서 본 한국의 정치·경제(1989)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공존(1989) -번역/해설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1995) ·한반도 통일의 철학적 원리(1997) ·아내에게 들려주는 경제이야기(1997) ·IMF. 알아야 이긴다(1998) ·The Korean Economic Crisis : Causes and Cure(1998) ·유종근의 신국가론(2001) ·강한 대한민국의 조건(2007) ·한국과 이혼하라(2007) –번역 ·선진국이 되는 비결(2013), 신국가론 몽골어 판.  

▲(사)한국경제사회연구원은 유종근 박사의 이사장 취임 기념행사로 오는 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대회의실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주제는 ‘국가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다.

취임 인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인 이영훈 목사의 축복기도로 시작한다.

심포지엄은 정치, 정부, 경제개혁 등 3분야로 나눠 진행된다.

정치개혁은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발제로, 토론은 김윤택 고려대 교수,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이 진행한다.

정부개혁은 이재열 서울대 교수의 발제와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이창원 한성대 교수의 토론이 이어지며 경제개혁은 이진순 숭실대 교수의 발제 그리고 김상조 한성대 교수,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의 토론으로 진행된다.

(TEL.02-783-1414)

/서울=김일현기자 khe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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