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잎

소 재 호

 

그대 유년은 악몽처럼 길었다

어둠의 저쪽

가난과 추위와 좌절의 둑을 걸어나와

푸드득 몸 추스러 서다

아침마다 그대는 정갈한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한 떨기 풀잎

드디어 어귀찬 울음이 되다

 

우리는 안다

가난한 자의 눈에 이슬 맺힘과

아픈 자의 노을 눈빛을 느꺼워하며  

오히려 그대 가슴 저미던 것을

 

우리는 안다

잠속에서 오히려 깨어 있던

그대 푸르른 손짓을

오랑캐바람이 할퀴고 간 뒤에도

물 무늬의 끝자락에서 고개 세우던 것을

그러나 그대는 들어야 한다

밤마다 유랑하는

슬픈 별들 영혼의 목청을

생명의 빛으로 환생하기 위해

온몸으로 그대에게 맺히며

아픈 아침의 소리로 다가옴을

  

 

시작 노트

무관심 속에서, 배척과 멸시 속에서 풀은 뿌리를 은밀하게 뻗으며 생명 그 가장 고귀한 가치를 키워간다.

자연은 인위가 아니다. '스스로 그러한 대로' 백악기나 아니 천지 창조 이후에도 줄곧 한가지 신념, 한가지 진리로만 오늘까지 의연하다.

가난하여도 인간성을 더욱 짙게 가꾸며 서민 민중의 삶이 이처럼 어귀차다.

엄습해 오는 어둠과 공포와, 인간 말살의 세태에도 우리는 굳건히 실존적으로 번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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