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35.8··· 전북의 이정현을 꿈꾸다
18.2··· 35.8··· 전북의 이정현을 꿈꾸다
  • 박정미
  • 승인 2015.05.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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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불모지 전북서 6년간 도전장 대구 김부겸 벽 허물듯 도내 변화바람 기대 미꾸라지 천적 강한 메기 나와야 고등학교는 재수로 대학은 삼수로 들어가 정치도 삼수··· 잘될 것 6년간 주민과 동고동락 등 돌린
▲ 제2의 이정현 의원을 꿈꾸며 전북과 중앙을 잇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싶다는 정운천 전 장관.

전북에서 지역감정 해소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여기에 도전하는 이는 ‘계란을 갖고 바위 치는 바보’로까지 불린다.
30년 가까이 민주당 정서로만 살다 보니, 지방선거나 총선에서도 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 후보들이 뽑혔던 곳이기 때문이다.
무소속 후보들이 당선되기도 하지만, 여권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그런 전북에 6년간 연거푸 도전장을 내민 겁 없는 여권 정치인이 있다.
바로 새누리당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신념으로 전북의 이정현을 노리는 정 전 장관을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본사 임원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주

 

“적진 한 복판에서의 삶, 외롭지 않으신가요?” 인터뷰 시작에 앞서 문득 심적 고통이 궁금했다.

그러자 “지역주의 벽을 무너뜨리는 게 이 정도로 힘이 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최근 일당독주에 균열이 생기고, 민심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며 흐뭇해 했다.

순천 곡성에서 새누리당으로 출마해 49.4%를 얻어 당선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의식한 발언이다.

뜻밖이었다는 말도 내비쳤다.

전북도 아닌 전남 광주에서 지역주의 경계가 허물어지다니.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였던 정 전 장관은 18.2% 받아 처음으로 전북에서 두 자리를 얻었고 2012년 4.11총선에서 완산을 국회의원후보로 35.8%라는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2012년 12.19일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13.2%을 얻어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두 자리숫자를 선물했다.

반면 광주∙전남은 이 기간 새누리당 후보에게 단 한번도 1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전북이 지난 6년간 새누리당의 기대지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30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순천∙곡성에서 당선됨으로써, 정치변화의 물줄기는 순식간에 전남으로 사라져 버렸다.

 

[메기를 키우자!]

이제 전북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정 전 장관의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에서도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 전 장관은 전북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제 전북에 ‘메기효과’ 가 절실할 때라고 강조했다.

“전북정치에도 이정현 같은 메기 역할을 할 사람 몇 명은 키워야 한다.

미꾸라지의 천적은 메기인데, 이들은 한통속에 넣고 미국까지 보내면, 메기도 미꾸라지도 죽지 않고 힘차게 살아 있다고 한다.

고통과 위험이 닥쳐오면 모든 생물은 긴장해 더 활발히 움직이고 더 열심히 번식하며 훨씬 강해진다.

이를 적용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도 이와 비슷하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가 기본이며 복수정당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수 십 년간 지역감정의 틀 속에 갇혀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정당정치는 사실상 실종됐다.

경쟁 없는 정치는 무기력해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의 몫이 됐다.

전북엔 여당이 없고, 경쟁이 없고, 책임도 없다.” 며 강하게 비판했다.

전북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정치연합에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서라도 메기를 키워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삼수에 임하는 자세… ]

“고등학교는 재수, 대학은 삼수했다. 정치도 선거에서 두 번 떨어졌으니 삼수생인  셈이다.

삼수에는 늘 그랬듯, 잘 될 것이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전북정치의 변혁을 꿈꾸며,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정 전 장관의 각오다.

정 전 장관은 2010년 민주당 텃밭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도지사에 출마해 18.2%의 표를 얻었다.

불모지에서 거둔 역사적인 기록이었다.

그 후 2년 뒤인 2012년엔 전주 완산을에서 총선에 나왔고, 민주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성적표가 35.8%로 껑충 뛰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뛰었는데, 민심의 변화는 아직도 멀리 있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주변에선 “선거가 끝났으니, 서울로 가겠지.”하는 싸늘한 반응만 나왔다.

그래서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6년간 전북을 지키며 지역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자전거로 삼천천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보면 지역민들과 만나 이러 저런 대화도 나누게 된다고.한 시간 남짓한 거리임에도, 인사를 나누다 보면 2시간을 넘기는 게 다반사다.

처음에는 냉담했던 이들도, 이제는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고 정 전 장관은 자신했다.

그는 “민주당 일당 독주 30여 년, 전북의 정치 경제가 한계점이 이르렀다는 의견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보다 인물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이 ‘의미 있는’ 변화를 잘 꿰어 가는 게 이젠 나의 몫인 것 같다.” 고 설명했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과거처럼 냉랭한 시선이 아니어서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손을 움켜쥐며 눈을 맞출 때면 격려의 메시지가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고도 덧붙였다.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정 전 장관에게도 가족의 힘이 가장 컸다.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라 생각했던 부인이 25년된 교단을 떠나 전북에 뼈를 묻겠다며 함께하고 있다.

아이들까지 학교를 휴학하고 내려와 동행하며 헌신해줬다.

그는 “예비후보 등록 후에는 가족들 밖에 명함을 돌릴 수 없다.

때문에 미국 유학중에 있던 아들과 딸이 스스로 휴학계를 내고 아빠의 선거운동 지원에 나섰다.

상의한마디 없이 내려온 아이들의 결정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한 학기 졸업이 늦어지는 것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던 아들녀석의 발언에 깜짝 놀랬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 최경선씨도 전주로 주소지를 옮기고, 이사한 뒤 전주 사람이 됐다고 한다.

폭넓은 봉사활동은 물론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지역민과 끊임없이 스킨십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정 전장관은 이명박정부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을 맡아 의욕적인 출발을 했다.

농업을 고부가 6차 산업으로 만들겠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고려대 농대를 졸업한 후 80년 대기업취업을 뿌리치고, 전남 해남으로 내려갔다.

번듯한 대기업 사원 대신 흙과 더불어 사는 농사꾼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후 그는 해남에서 기적을 일궜다.

키위(참다래)를 산업으로 육성시켰다.

90년 거대한 해일과 같았던 수입개방 파고에 맞서 키위산업을 지켜냈다.

이어 고구마사업에도 손을 대 대박을 터뜨렸다.

농업도 혁신을 하면 얼마든지 수익성 높은 6차산업으로 환골탈태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는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경영자이기도 했다.

그가 일군 참다래와 고구마사업은 해남일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영농조합으로 성장했다.

참다래농장 100만평, 고구마농장 200만평으로 커졌다.

지난 20년간에 수백억원의 배당도 실시했다.

이제껏 단 한차례 적자를 봤을 뿐 매년 흑자를 냈다.

조합원인 농민들에게 이익금을 나눠줬다.

생산에서 가공 유통 수출까지 연계시키면서 1차산업인 농업을 첨단 6차산업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농업분야의 신지식인이기도 하다.

농업에 혁신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참다래의 경우 10월부터 4월까지 6개월 한시적인 영농에 따른 경영난을 타개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는 수입개방 후 대량으로 키위를 수출한 뉴질랜드측과 수입계 약을 맺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를 통해 1년내내 키위사업을 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고구마도 저장법 문제로 4개월이상 농민들이 놀아야 하는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1년내내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구마는 이제 사시사철 먹는 웰빙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만남을 갖게 됐다.

고려대 선배인 이 전 대통령은 MB정부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제안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의 MB는 역시 농업경영자로 성공한 정전장관의 농업경영 능력과 혁신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는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익산으로 내려가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광우병 사건이 터지면서 157일이라는 단명직 장관이란 오명을 떠안게 됐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그에게 전북에서의 출마를 권유했고, 정 전 장관도 이를 받아들였다.

지역감정의 벽에 갇혀있는 전북을 바꿔보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그 벽을 생각보다 높았다.

2번이나 낙선하지 청와대에서 배려차원의 직함들을 제안해 왔다.

그럼에도 정 전 장관은 이를 모두 뿌리치고, 전북에서 변화를 꾀해보겠다며 둥지를 틀었다.

그는 “되돌아 보니 참으로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정치인이었다”고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역주의 극복의 신화를 만들어 내겠다]

2010년 도지사 선거,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위원장은 “도지사 선거는 고착화된 지역 정치풍토에 파열음을 내는게 목표였다.

반면 국회의원 선거는 반드시 당선돼 변화의 결실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이들 선거를 통해 도민들의 지역주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당선은 못했지만, 새누리당에는 변화의 기대를 갖게 했고, 도민들은 희망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민주당에도 안주하면 안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준 의미 있는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지역 감정 해소는 정말 힘든 여정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 이젠 외롭지 않다.

내년 총선에서는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소신파들의 힘을 받아, 삼수생의 신화를 만들어 내겠다.” 며 의지를 다졌다.

/박정미기자 ju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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