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터닦고 宋 꽃피워 金 세계로
金 터닦고 宋 꽃피워 金 세계로
  • 박정미
  • 승인 2015.07.02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代 전•현직 시장에게 듣는3代 전·현직 시장과 ‘한옥마을 STORY’
▲ 전주 한옥마을 프로젝트는 김완주 전 시장이 만들고, 송하진 전 시장이 꽃피우고, 김승수 시장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 김완주 34대·35대 전주시장(1998.07~2006) ‘한옥마을 조성 장본인’

■ 송하진 36대·37대 전주시장(2006.07~2014.02) ‘한옥마을 꽃피운 장본인’

■ 김승수 38대 전주시장(2014.07~) ‘한옥마을 계승·발전의 장본인’  

 

아파트와 상가, 현대식 가옥들이 즐비한 도시 한 켠에 시대를 거스르는 전통 한옥 800여 채가 밀집해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도가 심한 이 지역은 전주 풍남동과 교통으로 한옥들이 많아 ‘전주한옥마을’이라 이름 붙여졌다.
1990년대 초 인구 5천명도 안 되는 이곳 한옥마을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과거의 모습 그대를 간직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 옛 것이지 사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 낙후가 심한 소위 ‘못사는 동네’였다.
그런 이곳이 어느 날 6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돌변했다.
못사는 동네에서 유명 관광지로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바로 3명의 전주시장을 거치며 20여 년의 세월이 투자된 뒤에야 이루어졌다.
전주한옥마을 프로젝트를 입안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김완주 전 도지사다.
이를 이어 받아 육성 발전시키고 꽃피운 이가 현 송하진 도지사. 김승수 현 전주시장은 이제 선배 시장들이 일궈놓은 한옥마을을 내실 있게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책무를 떠안게 된 주인공이다.
이에 3명의 전·현직 전주시장들과 한옥마을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봤다.
/편집자주 

 

■ 김완주 “못사는 동네를 전국적 관광명소로” 전주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도심에서 일본인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몰리면서 형성됐다.

하지만 전주시는 사료적 가치가 큰 기와집 보존 등을 위해 77년 이곳을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해 기와집 외에는 건물을 짓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이로 인해 지붕이 새고 벽 등이 낡아도 손을 데지 못해 주민들은 하나 둘 떠났고 이곳은 한동안 전주의 대표적인 판자촌으로 전락했다.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은 1998년 7월 취임하자마자 양상렬 전 시장 때 지지부진했던 한옥마을사업을 다시 꺼내 들고 한옥마을의 관광 상품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한옥마을을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했다.

김 전 시장은 한옥마을을 관광상품으로 육성시켜 지역주민들의 수익도 올리고 지역의 발전을 견인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김 전 시장의 생각처럼 주민들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20여 년 간 보존지구로 묶어두고 생활만 불편하게 만든 정부의 정책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전 시장은 “그 동안 쌓여온 주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깨뜨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지속적인 협상과 문규현 신부의 중재 등으로 주민들이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던 적이 있다.

결국 전주시는 한옥마을개발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김 전 지사는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개발사업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한옥마을개발 사업의 전권을 주민들에게 위임했다.

당시 김 시장은 예산만 지원하고 어떤 곳을 개발할지는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한 채, 두 채 지어가면서 한옥마을이 바뀌어가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시의 계획을 믿기 시작했다.

시는 한옥마을을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하고 한옥 신·증축에 최고 5000만 원을 지원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퍼주기식 예산’, ‘혈세 낭비’라는 반대 목소리도 거셌지만 김 시장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250억여 원의 예산을 더 투입해 한옥마을의 골목길을 넓히고 지금의 전통문화센터, 한옥생활체험관 등을 짓도록 했다.

김 시장은 보령하면 ‘머드’ 평창하면 ‘메밀꽃’, 함평하면 ‘나비’가 떠오르듯 전주하면 ‘한옥마을’이 떠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몇 년 뒤 맞아 떨어졌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하나 둘 한옥마을을 찾기 시작했다.

월드컵 당시에도 30만 명에 불과했던 관광객은 2004년 외국인 관광객 6만여 명, 내국인 60만여 명이 다녀갔다.

한옥마을을 관광하고 머무르며 벌어들인 관광수입만도 500억 원에 달했다.

김 전 시장은 여러 사업 중에서도 한옥마을의 성공적인 조성을 바탕으로 2006년 도지사로 당선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 송하진 “한옥마을 꽃을 피우다”

김완주 전 도지사가 전주시장 시절에 그렸던 한옥마을 청사진에 후발 자치단체장인 송하진 당시 전주시장이 다양한 색을 입히고 한옥마을의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다.

김 전 지사가 한옥마을을 본격 조성했다면 송 지사는 시장 시절 이를 확대, 꽃을 피웠다.

2006년 송하진 당시 전주시장은 취임과 함께 전주를 한식과 한지, 한옥 등을 산업화한 ‘한(韓) 브랜드’ 중심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송 시장은 ‘전주 한 브랜드 중심도시’ 청사진 6개 분야 59개 과제를 천명했다.

전주비빔밥의 표준모델을 개발해 지적 재산권을 획득하기 위한 상표등록도 송 시장에 의해 추진됐다.

특히 ‘한옥 브랜드’는 전주한옥마을을 기반으로 한옥의 브랜드화와 산업화, 실용화를 모색하고 전통한옥 건립과 보존, 전통가옥 기초 자료 조사, 데이터베이스 구축, 한옥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한옥 개∙보수 서비스센터 운영 등 보다 체계적인 계획들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었다.

송 시장은 당시 “전주의 강점인 전통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가장 한국적인 도시’ 이미지를 구축,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보고 가야 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김 시장으로부터 이어받은 한옥마을의 외연 확대는 물론 보다 구체화, 상세화, 체계화 시키는 데 주력했다.

김 전 시장 시절 지어진 한옥생활체험관에 판소리 민박시설 아세헌(雅世軒)과 다도체험관 설예원, 다도 및 예절체험관 동락원이 덧붙여졌다.

아울러 한옥마을의 중심을 경유하는 인공 실개천도 이 시기 조성했다.

2008년에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교동과 풍남동 등 47만㎡가 ‘문화산업진흥지구’로 선정됐다.

때를 같이해 송 시장은 일주일코스 전국일주 관광여행에 전주를 첫 숙박지로 할 수 있도록 국내 유명 여행사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을 했고, 전주의 명소와 전통문화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명품여행; 상품도 이 시기 개발했다.

2002년 전주한옥마을을 다녀간 관광객은 30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시기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찾았다.

이처럼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전주한옥마을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이달의 가볼만한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심 속 한옥에서 숙박을 하면서 한지와 한식 등 전주만이 가진 특색 있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고, 경기전과 오목대 등 전주의 유적과 역사를 기초로 관광객을 위한 이야기 개발에도 주력했기 때문이다.

체험형 관광으로 관광 문화의 개념을 바꿔가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앞 다퉈 벤치마킹에 나서는 등 지역 관광지 개발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2010년에는 한국 관광을 빛낸 최고의 별을 뽑는 심사에서 한옥마을이 선정돼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는 것은 물론 경남 하동과 전남 증도 등에 이어 국내에서는 7번째, 세계적으로는 133번째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기도 했다.

송 시장은 같은 해 10월 세계음식관광축제, 11월에는 G20정상회의 등 굵직한 행사들을 유치시키며 한옥마을을 국제적 관광도시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해를 거듭하며 늘어 2009년에는 무려 300만 명에 이르렀다.

그는 시장 재선 당시 밝힌 ‘관광객 500만 시대’ 달성 약속도 2014년 임기 내 지켜냈다.

 

 

■ 김승수 “점검, 그리고 한옥마을의 계승·발전”

전주역에서부터 시작된 옛 철길이 사라지고 떡방앗간과 국밥집이 있던 곳은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선지 오래다.

한옥마을 한복판에는 과거에 없던 인공 실개천이 흘러 들고, 구멍가게 수준의 옛 슈퍼가 있던 자리에는 유명 브랜드 빵집과 치즈가게가 들어섰다.

교동 일대의 주거용과 상업용 토지의 표준공시 가격은 과거에 비해 수십 배 이상 뛰어 올랐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경기전 앞 태조로 주차장과 리베라호텔 옆 주차장은 주말이면 늘 만석이다.

한옥마을 이곳 저곳에는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로 한 발자국 나아가기가 쉽지 않고, 베테랑 칼국수집은 밥 때가 지난 시간에도 장시간 줄을 서서 대기해야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목대 부근은 관광버스 대형차들과 관광객들이 주차해놓은 차들로 북적이고 있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100만도 채 넘지 못했던 전주한옥마을의 관광객은 700만을 넘어 1000만 명 시대를 넘보고 있다.

이제는 전주한옥마을이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로, 더 나아가 국제적 관광도시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한옥마을을 접하는 김승수 전주시장의 어깨는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오는 11월 한옥마을 슬로시티 재지정을 앞두고도 양적 성장에 치우친 컨텐츠 잡기에 나섰다 김 시장은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 연계 관광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주의 옛 영광재현과 전주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전라감영 복원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100년 만에 처음으로 전동성당을 새단장하고 있다.

또 남부시장 야시장 개장과 함께 한옥마을 활성화를 위해 평일·주말 야간상설 공연을 운영하는 등 야간 컨텐츠 확충을 통해 관광객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관광지를 조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모두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 전주 내 관광명소화 컨셉이다.

여기에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아중 호반도시 조성, 아중호수 수변 산책로 조성, 도심 물 순환 복원 프로젝트, 빗물유출제로화 단지 조성 등을 통해 전주를 지속 가능한 생태도시로 탈바꿈시켜나간다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는 한옥마을에 집중된 관광객들을 전주 곳곳으로 분산해 보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즉, 완산구의 한옥마을과 덕진구의 덕진공원 등을 연계해 관광객을 분산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과거 관광객의 수를 늘리려 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효율적인 운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관광객 유치를 위해 홍보에 주력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유치된 관광객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관리해 나갈지, 한옥마을의 양적인 면보다 질적인 면에 심혈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 숙박과 교통 등 심각한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시장은 1800면의 주차장 확보와 함께 올해 추가로 3000면을 더 확대해 주차장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또한 완산구에 집중된 관광객들의 분산을 위해 덕진공원을 대표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현재 추진 중이다.

선대 시장들이 일궈놓은 한옥마을을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김 시장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이유는 한옥마을이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 변혁의 시기 맞은 한옥마을

김완주 시장 때부터 시작된 전주한옥마을은 그 동안 송하진 시장을 거쳐 김 시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의 의도와 달리 역효과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며 역으로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산토끼를 쫓다 집토끼를 잃는 형국이 되었다.

지가가 높다 보니 회전률이 높은 음식 위주로 판매가 이뤄져 국적 불명의 음식들이 한옥마을 곳곳을 차지, 일각에선 ‘한옥을 가정한 먹자골목’이라는 혹평도 나오고 있는 실정. 처음 800여 채에 달했던 한옥들은 600여 채로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데다 외형만 한옥일 뿐 속은 카페나 커피숍 등 현대식으로 구성돼 한옥마을의 ‘정체성’ 문제도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옛 정취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지가와 임대료, 숙박시설의 부족은 특히 얌체상혼으로 변질되며 관광지 바가지요금으로 이어지고 있어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관광객 600만 시대를 맞으며 동시에 상업화도 급속히 진행됐다.

이런 저런 이유들은 슬로시티 재지정 탈락 우려를 촉발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한옥마을 관광 프로젝트. 이젠 ‘점검의 시기’가 돌아왔다.

여기저기 늘어놓은 것들을 한데 모아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또 이를 통해 변화가 필요한 것은 대대적 수술을, 계승할 것은 대대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박정미기자 jungmi@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