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수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모악산 자락에는 전북도립미술관이 있다.

화강석 계단을 올라 뒤돌아보면 발아래 구이저수지와 경각산이 맞물린 풍광이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참으로 절경이다.

이런 공간에서 매일매일 일하는 필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오는 9월 11일, 이곳에서 거사(巨事)가 있다.

문자 그대로 매우 거창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시아 14개국에서 50여 명의 현대미술계의 인사들이 펼치는 특별전이다.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는 전북미술을 아시아에 선보이고, 국제컨퍼런스를 통해 미술적 담론을 생산하고, 국제퍼포먼스로 흥을 더할 것이다.

전북으로 아시아현대미술을 불러들이고 전북의 미술가를 아시아로 진출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아시아는 제국주의 패권에 의해 대부분 식민으로서 근대를 맞이한 아픔을 갖고 있다.

아직도 한국사회의 곳곳에 그 역사의 상처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 안의 사대주의, 서구인의 뒤틀린 오리엔탈리즘, 그로 인해 형성된 옥시텐탈리즘. 그런데도 우리 자신의 미술언어로 프레임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아시아를 드러내고 우리의 미술적 프레임으로 아시아현대미술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정치적 혼란과 개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잡종교배적인 아시아를 현대미술로 말하려는 것이다.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에서는 치열하게 내달리는 미술가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아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미술적인 발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아시아현대미술의 힘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 본다.

소비자본이 만연한 절충의 시대에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회와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담아내는 데 예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사람살이에서 생겨나는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고 인문학의 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아시아현대미술전 2015’는 기적(奇跡)이다.

기적이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말한다.

우리 미술관에서는 이 특별전을 달랑 세 명의 학예사가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일당백’하고 있다.

너스레가 아니라 눈코 뜰 새 없이 숨 가쁘게 일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학예사에게 “일하지 말고 놀아”라고 썰렁한 개그를 하는 필자가 궁색한 적이 많다.

여담이지만 경남도립미술관은 학예사가 다섯 명이다.

부족한 학예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항상 큰 벽에 부딪혔단다.

‘전북도립미술관은 세 명으로도 돌아가지 않느냐’고. 우리 미술관에서는 기적이 일상이다.

기적 속에서 피어난 아시아현대미술을 맘껏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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