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재 언론인

고대 그리스는 해상 무역을 통해 번영을 이룩했다.

지중해와 북해에 숱한 식민지를 거느렸다.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세력 확장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그리스인들은 부(富)에 대해 이중성을 드러냈다.

이들은 부(富)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스파르타는 아예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했다.

스파르타는 국민들이 금과 은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아예 철(鐵)을 화폐로 이용했다.

철(鐵)을 화폐로 사용하면 재산을 모으는 게 어려울 뿐 아니라 교역을 확대하기도 힘들었다.

그리스의 주화(鑄貨) 도입은 교역 촉진을 위한 게 아니었다.

병사들의 월급을 지급하거나 벌금 또는 수수료를 징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화를 제작했다.

하지만 BC 6세기에는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주화를 발행했다.

주화가 널리 보급되자 교역은 자연스레 활성화됐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보다는 노동이나 경제활동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일부 지도자들은 노동을 장려했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Pericles)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교하는 연설을 통해 "아테네에서 가난은 수치가 아니다.

유일한 수치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이라고 외쳤다.

페리클레스의 생각은 지배적 정서에서 벗어났다.

그리스인들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에 뛰어드는 것은 자유인으로서는 수치라고 여겼다.

자유인은 그저 공동체에 대한 봉사에 주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플라톤은 "부(富)와 선(善)을 동시에 추구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철인(哲人) 통치계급은 개인적으로 재산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지배계급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데 이는 철인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는 진보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교역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고, 다른 구성원과의 거래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입장이다.

돈은 이런 거래를 촉진하기 때문에 유용한 수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의 용도를 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제한했다.

그저 돈만을 추구하는 것을 악(惡)으로 간주했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과는 무관하게 돈을 모으게 되면 공동체의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명예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리스에서 명예는 너그러움을 뜻하는 동시에 금전에 대한 초연한 태도를 가리켰다.

특히 귀족들은 돈을 부패의 상징으로 여겼다.

돈만 쫓으면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중세로 넘어오자 명예도 금전적 가치로 평가했다.

자유인이라면 누구나 '명예가격(honor price)'을 가졌다.

자유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명예가격을 치러야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왕 또는 주교의 명예가격은 7 규멀(cumal)로 평가됐다.

7 큐멀은 21 마리의 암소 또는 21 온스의 은(銀)과 동일한 가치를 가졌다.

왕이나 주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면 21 마리의 암소나 21 온스의 은(銀)으로 배상했다.

스스로 명예를 훼손하면 명예가격도 떨어졌다.

최악의 경우 한 푼도 인정받지 못했다.

왕이 뚜렷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다면 그 뒤로는 명예가격을 요구하지 못했다.

신하나 백성들은 명예가격에 대한 부담 없이 왕을 조롱했다.

인간의 내면에는 이기심(利己心)과 이타심(利他心)이 병존한다.

이기심은 사회를 만든다.

인간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 이상을 얻는다는 믿음 아래 사회를 구성한다.

이기심만으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이타심은 사회를 유지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존경의 대상이 된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크기가 결정된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2000억 원의 개인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다.

기부 대상은 자신과는 무관한 곳이다.

기존 관행을 멋지게 깨트렸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재단에 재산을 내놓는 게 일반적 관행이다.

재산을 내놓으면서 명예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분명 파격이다.

이 명예회장의 명예가격은 2000억 원을 훌쩍 웃돌지 않을까? 숱한 부자들이 형제 간의 재산싸움으로 자신의 명예가격을 떨어뜨린다.

이 회장의 명예는 화폐로 따지는 것 자체가 실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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