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란 견해가 움직이기 전의 상태로, 스스로 느껴 보면 우주심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주심을 느끼고 그에 따라 움직였을 때, 맞았는지 틀렸는지 절로 답이 나오지요. 치우침이 없다면 맞는 것이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면 틀린 것이죠. 제대로 공부해 보면 설사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본인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화의 자리는 공자가 가장 신임한 제자 안회(顔回)조차 이루지 못한 단계입니다.

‘삼월불위인(三月不違仁)’, 석 달 동안 꾸준히 인(仁)을 어기지 않은 경지이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어묵동정 행주좌와(語黙動靜 行住坐臥)’,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멈추며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의 근본적인 행동이 언제나 화를 이뤄야 합니다.

성인은 자연스럽게 되지만 속인들은 이루기 힘든 경지입니다.

안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루었기에 아성(亞聖)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이죠.학문은, 특히 유학은 이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학(經學)에 바탕을 둔 체학(體學)을 누가 안다고 할 것이며, 그 용(用)인 술법(術法)을 누가 안다고 하겠습니까?비록 어느 한순간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제 뒤바뀌고 언제 화(化)해서 무너질지 모릅니다.

마음이 바르지 않고는 절대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지를 살리려는 마음은 추호도 흐트러짐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과 화를 그토록 중시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인식한다는 것은 단숨에 수백 권의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국은 이 같은 사실을 설명하고자 수많은 책들과 어렵기 그지없는 이론들이 난무한 것이죠.따라서 공부를 하는 목적은 사회와 국가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유학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그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효(功效), 즉 답을 낼 줄 알아야 진정한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겠죠.    유교의 부활, 신유교주의   공자께서 오랜 세월 연구하여 얻은 심득(心得)을 한 글자로 나타낸 것이 바로 ‘인(仁)’입니다.

어진 마음으로만 산다면 문제가 생길 까닭이 없지요. 다른 종교나 철학 역시 사랑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요? 그토록 인을 강조한 유교가 보다 체계화되고 정치를 위한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소 변질된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정신만큼은 인간의 마음에 바탕을 둔 ‘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유교는 공자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공자 역시 공자 이전에 있었던 내용을 모아 다듬었고, 《논어》 또한 공자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훗날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죠. 어쨌든,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 모두가 잘살기 위해서는 바른 정신과 효율적인 제도가 필요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올바르고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하며, 그 바탕은 인(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유교입니다.

《중용(中庸)》 〈성론(聖論)〉에 ‘지금 세상에 나서 옛날의 도리로만 회복하고자 하면 일신에 재앙이 미칠 수 있으니 시세에 순응하라. (生乎今之世하야 反乎古之道면 如此者災及其身者也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유교는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오늘날 신유학의 새로운 사유(思惟)로 일컬어지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장인 두유명(杜維明)은 그의 저서 《대화와 새로운 창조(對話與創新)》에서 21세기에 걸맞은 유교 사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상호 배려의 원리와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이의 처지를 헤아리는(推己及人) 삶의 도리입니다.

이와 같이 유교는 나를 근본으로 다른 이를 배려하고, 나아가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사랑을 실천하는 학문입니다.

이런 유학의 원리는 서구 계몽주의 정신이 낳은 고립적 개인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한 우리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중심이라는 유교적 정신에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유교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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