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본주의(義本主義)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정치철학들과 어떻게 다른지 대조해 보아야 합니다.

의본주의는 상생을 통한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유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욕을 절제하고 공욕을 키우라는 점에서는 ‘모든 만물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묵가(墨家)의 겸애주의(兼愛主義)와도 유사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과의 정확한 차이를 인지할 수 있어야 공리주의와 겸애주의가 낳았던 폐단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본주의와 공리주의·겸애주의와의 대조를 통해 의본주의를 좀 더 깊이 이해해 보도록 하죠.  공리주의와 의본주의   공리주의는 의회민주주의· 시장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근대 여러 정치사상의 정당성을 부여한 철학이기 때문에 의본주의와 구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의본주의가 앞서 이야기한 여러 사상의 폐단을 일소시킬 수 있는 통합적 사상이라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철학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공리주의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도록 하지요. 공리주의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행복의 증진에 두어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실현을 윤리적 행위의 목적으로 본 사상입니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즉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그에 따르면 옳은 행위, 곧 의로운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여기서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가리키지요. 따라서 정책을 입안할 때에도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한 뒤에 총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는가?’가 중요한 물음으로 대두됩니다.

 공리주의에서는 인간을 언제나 쾌락(행복)을 추구하고 고통(불행)을 피하려 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합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기준도 이러한 공리적 인간관에 기초합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쾌락과 행복을 늘리는 데 기여하는 것은 선한 행위이지만, 고통과 불행을 크게 하는 것은 악한 행위입니다.

나아가 사회의 행복을 최대로 하려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많은 행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을 실현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행위의 선악을 쾌락의 기준으로 정하는 이러한 원리를 ‘공리의 원리’(Principle of utility)라고 하지요.따라서 공리주의에서는 공리가 최대가 될 수만 있다면 개인의 권리는 무시되는 극단적인 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콜로세움에 그리스도인을 사자와 함께 몰아넣고 구경한 일이 정당화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다수의 로마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하고 쾌락을 느꼈다면, 그리고 그 쾌락이 한 사람의 희생보다 양이 크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됩니다.

공리주의는 그렇기 때문에 ‘공리를 위해 소수의 권리나 이익을 무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부터 ‘모든 가치를 단일통화로 계량할 수 있는가’ 등 여러 가지 의문을 일으킵니다.

그럼에도 경제학에서는 지금까지 공리주의적 사고가 아주 유용한 분석의 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도덕적인 가치까지도 값을 매기려 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발상일 수도 있겠지요. 이윤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 말 그대로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이죠.이런 공리주의와 의본주의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의본주의와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은 같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의본주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우주를 운행하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존재, 즉 천리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천리는 앞서 설명하였다시피 절대적으로 선한 마음이며, 그 마음이란 만물을 살리려는 어진마음, 곧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의(義)라는 것은 절대적인 존재인 천리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이 되므로, 이(利)의 크기에 따라 의(義)가 결정되는 공리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 다음호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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