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문 전주남부교회 목사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라는 인격체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반문을 해보는 것을 통해 인격적 성숙함을 이룰 수 있다.

자신의 지금의 행동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을 반문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들의 동기가 스스로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들이 많다.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에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으로 흐르기 쉽고 그로인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으로 흐르기 쉽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우리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은 집단이기주의로 흐르게 되기 쉽다.

그러나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이타적이거나 공동체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타인이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과 함께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다만 그 사랑이 자신과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편견과 편협함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치우친 사랑이 다른 한편에는 치우친 사랑만큼이나 미움과 분노를 통해 고통을 만들기도 한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모기업의 총수가 클럽에서 자신의 자녀가 다툼으로 인해 다쳤다는 것으로 상대방에 대한 보복으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 사건이나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에게 물리적 훈계를 한 교사에게 폭행을 하는 사건 등과 같이 내 것, 우리 것에 대한 편협한 사랑으로 많은 불의와 불평등으로 이차적인 슬픔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편협한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이기심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정의도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 치우친 즉 편향적인 정의는 정의가 아닌 아집과 이기적인 일이 된다.

이슬람의 명예살인은 그들 자신들에게는 정의가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살인행위에 불과하다.

이슬람국가(IS)의 전쟁은 종교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이지만 무자비한 살육과 살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 기독교 역사 속에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 역시 정의를 구실로 하는 살상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지 올바른 것이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을 해볼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동하는 가장 확실한 집단이 국회의원들이다.

그 집단은 모든 것이 자신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느냐와 맞추어져 있지 않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한다.

법원의 판단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에 대해서는 법의 정의가 살아있다고 말하고 불리한 판결에 대해서는 법의 정의가 죽었다고 말한다.

여당이 야당의 위치가 되고 야당이 여당의 위치가 되면 판단의 기준조차도 반대로 바뀐다.

판단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방식으로 입맛에 따라 바뀐다.

요즘 국사교과서의 문제로 정국이 요란스럽다.

필자는 아직 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여야 하는지 당위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정부와 여당에서 그 당위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황교안 국무총리의 PT를 통한 설명 정도인 듯하다.

야당의 대응도 문제이다.

민생을 위한 경제를 말하면서도 역대 국회 가운데 가장 작은 법안 처리로 식물 국회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모든 국회활동을 올 스톱한다면 궁색한 변론밖에 되지 않는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이전에도 국회활동은 공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역사(歷史)는 역사(歷事:역사적 사실)가 아니다.

모든 역사의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사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역사의 기록들이 훗날 재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歷事)는 변함이 없는데 역사(歷史)는 변하게 되고 같은 역사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이익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는 것이다.

현재의 국사 교과서가 잘못되었다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먼저 공론화를 거쳐 수정의 당위성이 만들어져야 한다.

최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역사교과서는 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집필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하고 국가는 학계가 역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편찬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우리 학생들은 편향되지 않은 역사 교육을 받은 권리를 갖고 있고, 기성세대는 학생 등에게 편향되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담보해 줘야 한다.” 고 강조하고 “정치는 국민을 통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는 말에 공감한다.

자신이 하는 일들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기보다는 진정으로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일인데도 올바른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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