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후불제여행사 통 크게 키운 작은 거인
세계 최초 후불제여행사 통 크게 키운 작은 거인
  • 홍민희
  • 승인 2015.11.12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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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전주서 멤버십형태로 문열어 6개월 회비 납입땐 고객 믿고 서비스 '믿음' 있었기에 '발상의 전환' 통해
▲ '사람을 향한 믿음'이 자신을 이자리에 서게 했다며 이윤보다 사람을 남기고 싶다는 박배균 투어컴 대표./김현표기자

이윤보다 사람을 남긴다.
직원이 경영한다.
고객을 친구로 만든다.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면 지금 이 사람을 주목해야 한다.
사업의 제 1원칙이 수익 창출이라는 점은 이젠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늘 맞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는 기업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식의 틀을 깨고 더 큰 나래를 펼치고 있는 작은 거인이 있다.
돈 보다 사람, 이익 보다 인심, 거래관계가 아닌 동반관계를 꿈꾸는 박배균(50) 투어컴㈜ 대표는 이제 전국 520개 지점과 65개 지사에서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만들어내는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숱한 사업 실패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가 세계 최초 후불제 여행사라는 개념을 내세워 여행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삶의 질곡이 궁금해졌다.
깔끔한 옷차림과 싱글벙글한 미소로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박배균 대표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인생이 여행이다!’읽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단어를 하나만 꼽자면 ‘여행’을 들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중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여행을 갈 여유가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이들이 꿈처럼 여기는 여행을 일상 생활로 끌어온 사람이 있다.

바로 세계 최초 후불제 여행사 투어컴㈜의 박배균 대표다.

세계 최초도 놀랍거니와 후불제 여행사라는 말은 더더욱 새롭다.

여행을 후불로 간다라는 발상 자체가 신선한 탓이다.

2007년 10월 전주에서 첫 시작을 알린 투어컴은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간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여행을 한번 가려면 목돈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1만 6천 개의 여행사 중 대부분은 지금도 여행객들에게 선금을 받고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다.

후불제란 일정 금액을 내고 멤버십 형태로 가입한 후 6개월 정도만 꾸준히 납입한다면 회사가 그 동안의 신뢰를 바탕으로 적립한 금액의 100%를 추가로 투입, 회원이 큰 금액을 부담하지 않고도 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한 번에 수 백 만원을 들이지 않고도 가볍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인 것이다.

이런 후불제 경영을 처음 떠올린 것은 상조회사의 이사로 재직할 때였다.

다니던 상조회사에서는 그룹 안에 여행사를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여행사는 매달 천 만원 이상 적자상태였다.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져 잘 운영되고 있는 상조회사의 재정마저 위태롭게 했다.

이미 상조시장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던 때였다.

혁신이 없다면 그룹 내 여행사처럼 자멸할 일이 뻔해 보였다.

불현듯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상조회사를 후불제로 운영해보자는 것이었다.

보통의 상조회사들은 정해진 돈을 받고 큰 돈이 필요할 때 그 돈을 돌려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부족한 돈은 고객이 메워야 했다.

박 대표가 말한 후불제는 그 부족한 돈도 상조회사에서 주는 방식이었다.

개인은 계속해서 회사에 돈을 내면서 목돈을 내야 하는 부담감을 더는 것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객을 어떻게 믿고 돈을 빌려주냐는 볼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래서 나는 도리어 반문했다.

그럼 고객들은 우리를 어떻게 믿고 그 돈을 맡겼던 거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믿음이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없다면 결코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여행사에도 이 믿음을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전화 속 저장된 사람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1200명이 넘는 사람 중에 고작 30명만 자신을 믿고 기존 여행사 상품에 돈을 투자했다.

후불제라면 지인 뿐 아니라 일반 고객들도 솔깃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그 길로 사업 철칙을 세웠다.

간단 하면서도 체계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원칙은 세 가지로 규정됐다.

적립금과 같은 금액 지원해주기, 서로 복잡한 이자와 보증관계 증명 서류 없애기, 최소한 6개월 이상 연체되지 않은(약속을 지킨) 고객에게 지원해주기. 후불제 여행사의 등장은 여행을 꿈꿨던 일반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사업 투자자들은 흥미로워 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고객을 어떻게 믿고 돈을 빌려주냐는 것이었다.

우문(愚問)에 대한 현답(賢答)은 단 하나였다.

당신이라면 돈을 안낼 것인가. “기업가들은 고객들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정말 믿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객을 믿는다면, 그리고 고객의 꿈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장난 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투어컴 역시 결국은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체인 만큼 꾸준히 납입금을 지불하는 고객에게만 서비스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한 사업의 리스크는 단 2.5%다.

믿음을 내건 기업정신이 통한 것이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성장해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 같은 성공 스토리지만 그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완주군 용진면 신지리에서 7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나이 터울이 큰 누나들이 업어 키웠다고 기억한다.

시골의 환경은 도시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넉넉했다.

부모의 쾌활한 양육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형과 누나들은 공부를 잘했다.

자신과는 정 반대였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공부를 못한다며 타박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괜한 자격지심에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산으로 들로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 오는 일이 맘 편했다.

공부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깨달았다.

대학 진학은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자신 있는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던 그를 어여삐 여긴 동네 어른들이 마을 이장직을 권유했다.

25살, 마을의 최연소 이장이 됐다.

이장으로써 마을 일을 알뜰히 챙겼다.

농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빚이 늘어갔다.

마을 대소사와 더불어 지방자치의 시작으로 농사 일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결국 도시로 나왔다.

35살의 일이었다.

처음 도시로 나와 시작한 일은 예식장이었다.

2년 동안 70건의 예식도 진행되지 못한 낡은 예식장을 쉽게 인수했다.

하지만 운영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예식장 사용 무료’를 내걸었다.

지금에서야 식대만 계산하면 식장 사용은 무료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전북 지역에서 그렇게 운영하는 예식장은 없었다.

식대만 받아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관례처럼 식장 대여비를 내왔던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며 1년에만 250건의 예식을 치러내는 곳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달콤한 성공이 독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예식장 사업 이후 10여 년 간 수 많은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음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PC방 사업을 시작으로 인터넷 게임 랭킹서비스, 자동차 녹 제거 업체 등 안 해본 일 없이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신용불량자라는 오명 뿐이었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미 나이는 40줄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되돌아 걷는 그 순간들이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시 마음을 동여매고 결승점을 향해 걸음을 뗐다.

그렇게 다시 상조회사에 취직했고 그때의 노하우로 지금의 여행사까지 이어져오게 됐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레인 위에 선 것이다.

그간의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을 믿고 일을 진행하는 일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믿음은 고객을 넘어 직원들에게도 돌아갔다.

회사의 사훈은 ‘직원이 경영한다’. 직원들은 채용 당시 자신이 받고 싶은 연봉을 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준다.

적으면 오히려 올려준다.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라는 뜻에서다.

면접도 사장인 자신이 보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부서원들이 면접관으로 나선다.

실제 일할 동료들이 평가해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 운영에 관한 지출 결정권 또한 직원에게 부여했다.

큰 책임감이 따르긴 하지만 그만큼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는 직원들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원하는 대로, 남들의 시선에 따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직원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준다면 그들 역시 성실한 업무태도로 보답한다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직원을 믿어주는 사장과 그 믿음에 보답하는 직원들이 만들어낸 시너지는 매달 2~30개의 지점을 늘려간 원동력이 됐다.

올 초엔 필리핀 마닐라에서 비전 선포식을 갖고 해외 1호점을 신설하는 등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외형 확장에 급급히 마구잡이로 지점을 늘리진 않는다.

보다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후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는 수 차례 지점을 내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안정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확장은 독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숨을 고르고 있다.”

온화한 리더십과 침착한 대응능력의 근원이 궁금했다.

단번에 ‘독서’라고 대답한다.

40살 이전에 읽은 책보다 40살 이후에 읽은 책이 훨씬 많다는 그는 독서에서 비롯한 인문학 정신이 기업을 운영할 때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만큼이나 독서 장려 캠페인도 활발하게 펼치는 것은 독서가 가진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재 (사)전국독서동아리클럽연합회를 창립,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가 가진 힘을 전도하는데 앞장서고 있을 만큼 문화인으로서의 면모도 갖춰가고 있다.

이제 후불제 여행사는 꽤 흔히 볼 수 있는 여행업 형태가 됐다.

그의 시작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일이다.

후발주자 중 대부분은 이곳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다.

왠지 서운할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단다.

오히려 사업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필요하면 지원금을 선뜻 내어놓기도 했다.

그들의 선택을 지지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고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느낀다.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최근 서울 서초에 번듯하게 투어컴 본사를 마련했다.

전국 단위의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인 셈이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애정이 가는 곳은 전주란다.

“가끔 사업 투자를 문의하는 타 지역 사람들이 본사가 전주라는 점을 알고는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도 많았다.

서운했지만 그들의 입장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주는 내게 기회를 준 터전과도 같은 곳이다.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고 싶다.”

그는 최근 이 같은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전국을 오가며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성공했다라는 식의 자전적 강연이 아닌 더 많은 창업자들과 기업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강연으로 진행되니 책도 내며 유명 인사로 거듭나고 있다.

긍정적인 성격과 불굴의 의지로 거대한 사업을 꾸려 온 그가 그려갈 다음 미래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며 놀란다.

하지만 후불제 여행사의 개념은 창조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일 뿐이다.

남들이 상식이라 여겼던 것을 뒤집어서 실천에 옮긴 것이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좌우명이 ‘떨리면 떨면서라도 하자’이다.

오늘 당장 두렵고 떨린다고 해서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더 이상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투어컴 정신인 ‘사람을 향한 믿음’이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사용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박 대표와의 대화를 마치고 문 밖을 나서는데 금빛 문구가 눈길을 끈다.

‘10조원 그룹의 발원지’. 자신만만한 저 문구가 어딘지 모르게 허무맹랑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가 걸어온 발자국이 주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홍민희기자 hmh@ 

 

 

 

박배균 대표가 걸어온 길

 

젊은 시절 시골에서 젊은 이장으로 활약하다 뒤늦게 사회로 나왔다.

경쟁사회의 긴 달리기에서 자주 넘어졌지만 행동이 먼저라는 생각에 멈추지 않았다.

창의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후불제여행사 투어컴㈜을 전국 520여 개 지점 65개 지사로 성장시켰다.

삶의 여유는 여행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그는 독서와 시 낭송을 사랑한다.

열린 경영으로 직원들의 행복을 가꾸고, 재산의 사회 환원이 삶의 목표다.

매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 다양한 곳에서 봉사와 책 기부를 통해 버는 것 보다 나누는 것의 참된 기쁨을 깨닫고 있다.

농림수산부장관상, 전주시장상, 전북도지사상, 서울시장상, 언론사연합주관 한국창의기업대상,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사회봉사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투어컴㈜ 대표이사이자 프렌차이즈산업협회 전북지회장, (사)전국독서동아리클럽연합회 창립회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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