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수 경제부장

부지런함은 부의 가능성을 높여 주는 요소로서 누구에게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긍정적인 의미의 말이다.

반대로 게으름은 빈곤의 대명사로 항상 홀대 받는 부정적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앞만 보고 부지런히 달려온 현실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정신적 피폐를 초래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즉, 속도 문명이 인간성 파괴를 야기 시킨 것이다.

그러면 대안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느리고 느긋한 삶의 패턴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생소한 모험이 될 수 있지만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과감한 방편으로 고정관념을 탈피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서두르면 일의 실마리가 흐트러져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지만 느긋하게 시공의 여유를 갖고 일에 임하면 마음의 평온을 얻어 판단력을 바르게 할 수 있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급변하는 국제화 시대를 적응하기 위하여 마냥 앞만 보면서 질주하는 바쁜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 이른바 경쟁 시대를 살아오고 있다.

한 마디로 정신없이 살아 온 것이다.

달리면서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유로움 속에서 생각하면 고요한 물에 어린 선명한 그림자처럼 깊이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떠오르고 기억도 오래 남는다.

개미와 베짱이 얘기를 하면서 느리게 사는 것에 무게를 둔다는 자체가 모순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하는 조건부 해석이 불가피하다.

그것은 느림과 게으름은 의미가 아주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겨울철 양식을 마련하기 위하여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의 근면성은 높이 평가 되어야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시원한 나무 밑에서 노래만 하는 베짱이의 게으른 태도는 분명히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느리게 산다는 의미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해 간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상황이 되려면 우선 경제적, 시간적으로 어려움 없이 삶의 필요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바쁜 세상에 느리게 산다는 철학에 집착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먼 나라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러한 느림의 여유는 물질적 풍요에서보다는 정신적 만족에서 더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당신은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마음을 바꿔라.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을 진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적당한 순간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때이다.

프랑스의 피에르 상소가 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에서 느림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므로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종전에 도저히 상상도 못한 철학과 진리 그리고 용기와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느림이라는 것이 특이하고 낮 설은 정체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넉넉한 시간을 즐기며 여유롭게 출근 하는 당신은 분명이 하루를 보람차게 보낼 것이다.

희망차고 자신감 넘치는 몸과 마음을 갖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향해 힘차게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고 행복한 일인가. 아침에 출근 하면서 골목길을 청소하는 미화원 아저씨의 부지런함 속에서 느긋한 느림의 미학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이웃 파출소 경찰 아저씨나 당신이 사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가벼운 인사를 먼저 건네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당신은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철학을 갖고 삶을 살고 있다는 증표가 된다.

우리는 나날이 변모하는 정보화, 세계화 시대로 자신을 잊은 채 급속히 치닫고 있다.

이 와중에 어리석은 토끼가 아니라 지혜로운 거북이가 되어 자신의 내면세계를 차분히 관조하며 서둘지 않고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지혜와 용기를 펼쳐 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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