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빈민가서 만난 이웃드로가의 삶 속에서 주인공의 아픔 치유과정 그려

손서은 ‘테오도루 24번지’

출판사 문학동네  

 

손서은 작가의 ‘테오도루 24번지’(출판사 문학동네)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그리스 빈민가(테오도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색색의 사연을 품은 이웃들의 연대와 좌충우돌 성장을 그린 작품으로 저자가 그리스에 직접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갔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문장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다양한 사건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제6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금이 아동청소년문학가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고 짚었고,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유영진은 “우리 청소년소설의 배경을 확장시킨 작품”이라 평하며 “이 소설이 가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와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교차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윤성희는 이 소설이 가진 ‘활력’과 ‘이야기의 힘’을 높이 평가했으며, 시인인 김진경은 기성세대와 달라진 청소년의 현실을 담은 ‘새로운 언어’를 이 작품의 미덕으로 꼽기도 했다.

주인공 민수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이 있는 10대다.

민수의 엄마는 고등학교 때 민수를 낳은 후 사라졌고, 아빠는 민수가 여섯 살이 되던 해 “2년이야. 아들, 2년은 금방이야”라며 민수를 보육원에 맡기곤 5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났다.

재회한 부자는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아무도 그들의 아픔을 모르는 곳, 그리스로 이주해 왔다.

하지만 5년이 흘러도 메울 길 없는 부자 사이의 어색한 침묵.부자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테오도루는 ‘신의 선물’이란 이름의 뜻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테네에서 가장 구석지고 허름한 거리다.

‘웰컴 투 그리스’라는 광고 문구 아래로 굳게 닫힌 셔터, 거칠게 휘갈겨진 낙서와 그라피티, 침낭과 신문지를 뒤집어쓴 노숙자들이 그리스의 쇠퇴를 낱낱이 보여 주는 곳이 바로 테오도루다.

민수는 그리스로 밀입국한 흑인 소년 요나와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 해체의 위기를 맞은 바소 가족을 만나게 된다.

민수와 동갑내기인 열여섯 소년 요나는 막냇동생 같은 딸을 가슴에 매달고서 ‘짝퉁’ 가방을 팔며 살아가는 미혼부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바소 가족 앞엔 16년 동안 보육원에서 지내다 아버지의 가족을 찾아온 레오니스가 나타난다.

이들이 품고 있는 사연은 민수의 마음속에 꽁꽁 얼려 두었던 기억과 상처를 건드린다.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가 낯선 도시, 낯선 나라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며 민수를 끊임없이 괴롭게 한다.

학교와 집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부터 경찰에게 쫓기거나 파시스트에게 공격당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 그리고 가출 등의 각종 스펙터클한 일까지 함께 겪어 나가는 그들은 심각할 만하면 우스갯소리를 하고,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싶으면 슥 비껴가 버리다가도 필요한 순간엔 서로의 어깨를 두드릴 줄 안다.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는 사이, 민수는 묻어 두었던 자신의 상처를, 옆에 앉아 “친구, 그냥 사는 거야”라고 말해 주는 친구들을 통해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심사위원 윤성희는 민수와 아버지의 갈등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민수에게 다양한 사연을 지닌 친구를 만들어 주는 점을 이 작품의 미덕으로 내세우며 “좋은 소설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 나온다. 주인공의 친구들이 바로 그 ‘거울’인 셈이다. 상처는 나 혼자 극복할 수 없다. 관계 속에서 극복해야 한다. 인물과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대화하고,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말이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러했다”고 평했다.

아테네의 골목을 직접 걸어 다니는듯한 구체적 묘사, 인물들의 가지각색 개성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손서은 작가가 4년의 그리스 유학 생활 동안 거주했던 공동주택과 그 이웃들을 모델로 삼아 탄생했다.

소설 속 삼 남매 디미트라, 마르타, 콘스탄티노스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은 실제로 서슴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삶을 나누었던 그의 가족 같은 이웃들이다.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그리스의 극심한 빈부 격차, 가족 해체, 청년 실업 등의 사회문제들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교차되며 다른 나라, 먼 곳의 이야기를 지금, 이곳의 이야기와 결부시킨다.

/윤가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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