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여자-마약 따라다녀 음악적 완성도 높지만 인생 외롭고 처절해 한 사람 일대기 동시에 미국사회 단면 보여줘

한 사람을 이야기할 때 술과 여자 그리고 마약이 거론되면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망가진 인생 그 자체일 터.

하지만 예술가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위해서 술과 마약이 필수조건이라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또 가장 피폐하고 정신적으로 쇠락해졌을 때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영화 ‘본 투비 블루(Born to be Blue)’는 이 시대 최고의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일생을 담고 있다.

잘 알려지다시피 쳇 베이커는 순탄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항상 마약이 옆에 있었고 술과 여자가 따라다녔다.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선두주자로 알려지면서 음악적 완성도는 높았지만 그의 인생은 외롭고 처절했다.

성공과 타락 사이에 자신을 던져버린 그는 결국 자살과 타살 논쟁이 생길 정도로 의문의 죽음을 택함으로서 사람들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는 한 사람의 일대기임과 동시에 당시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쳇 베이커의 존재가 맘에 거슬리는 재즈의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의 등장은 뜻밖이며, 마약에 찌든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가 여과 없이 표현된다.

영화는 쳇 베이커가 몰락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과거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모습이 흑백 화면으로 교차하면서 동시에 표현된다.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

하지만 계속된 마약과 불량배들의 폭력으로 치아가 부러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트럼펫을 놓지 못한다.

현실과 과거 속에 빠진 채 두려움과 죽음에게 이별 통보를 하는 주인공은 타락한 사람의 모습이지만 ‘연주가 하고 싶다’는 절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그의 인생을 평범하게 엮어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뿌연 안개같이 처리된 영상만이 순탄하지 못한 삶을 대변한다.

당시 사회의 시대적 표현이나 관객들에게 남길 점을 억지로 만들지도 않은 듯싶다.

대신 배경음악을 통해 음악가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

또 복귀무대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 흘러나오는 쳇 베이커의 대표작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의 관심 속에 마약에서 해방된 그가 다시 과거 모습으로 돌아가며 들려주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어(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는 영화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노래이자 그에게서 떠나가는 연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술과 마약, 여자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였을까. 음악을 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착한 영화보다 비극적 영화에서 보다 깊은 인간적 감정을 느낄 수 있듯이 자신이 쳐놓은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비극적 삶을 그리고 있다.

결코 달콤하지 않은 인생을 통해 달콤한 노래를 선보인 쳇 베이커를 ‘악마가 부르는 천사의 노래’라 부르는 이유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쳇 베이커 역을 맡은 주연배우의 연기를 비롯해 1950년대의 완벽한 재현, 영화 전반에 흘러나오는 음악 등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흑인중심의 재즈세계에 등장한 백인 주인공, 그 백인과 사랑을 나누는 흑인 여인, 인기에 영합하는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를 무리 없이 이끌어가는 감독의 연출력도 상당하다.

증폭된 갈등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는 마치 느긋하게 때론 이야기하듯 읊조리는 쳇 베이커의 노래와 제대로 된 닮은꼴이다.

만약 감독의 연출의도가 맞다면 이번엔 제대로 영화 한 편 본 셈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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