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땅, 동서양 건축 조화를 이루다

▲ (사진 왼쪽부터) 성당 내부, 성체조배식
▲ 성당 뒤 동산에는 김대건 신부 석상이 위치하고 있다.
▲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돼 첫 출발을 디딘 익산시 망성명 화산리에 위치한 나바위성당.

북쪽을 향해 얼마나 갔을까.

전북 권역을 벗어나기 직전에서야 나바위성당을 만날 수 있다.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위치한 나바위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돼 첫 출발을 디딘 곳이다.

나바위성당은 당초 마을이름을 따 화산성당이라 불렀다가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 현재 이름으로 바꾸었다.

나바위는 나암의 우리말 표기로 광장 같은 너럭바위가 화산 정상에서 강가로 널러 있어 생긴 이름이다.

나바위성당은 김대건 신부와 관계가 깊다.

15세 나이로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받고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1845년 이곳에 오게 된다.

훗날 천주교에서는 김대건 신부가 나바위에 정착한 일은 ‘하느님의 섭리’라 일컬을 정도로 이곳은 축복의 땅이 됐다.

성당은 1897년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1906년 신축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완공됐다.

설계는 명동성당을 만든 프와넬 신부가 했고 목수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건축양식은 한옥의 전통양식을 취했는데, 한옥지붕을 한 모습에 흙벽은 양식벽돌로, 성당입구는 고딕식 종탑이 자리잡았다.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8호다.

내부는 당시 전통관습에 따라 남녀구분을 위한 칸막이가 설치됐고 현재까지도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부에는 김대건 신부의 목뼈 일부가 모셔져 있으며, 1908년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계명학교가 운영되기도 했다.

성당 뒤 동산으로 발길을 옮기면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비와 성상, 그리고 동산 위엔 망금정이 위치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산 뒤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다.

자세히 봐야만 알 수 있는 마애삼존불상은 나바위성당이 만들어지기 전 금강을 오르내리며 실어 나르는 배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새겨졌다.

천주교 성지로 알려진 곳에 불상이 새겨진 형세가 이색적이기 그지없다.

하지만 당초 이곳은 조선시대 사계 김장생이 임의정을, 우암 송시열은 팔괘정을 지어 후학을 양성할 정도로 유학의 요람지였으니 명당 중 명당이란 생각이 든다.

천주교와 불상이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어찌보면 무척이나 당연하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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